점자악보와 음악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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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악보와 음악점역사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0.09.1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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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의 시각장애인 음악가 레이 찰스가 컨트리 송 앨범을 만들 때, 지휘자 시드 펠러는 250개의 컨트리 송을 모아 점자악보를 만들어 레이 찰스에게 건네주었다. 레이 찰스는 그중 12곡을 골라 ‘Modern Sound in Country and Western Music’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고, 앨범은 대박이 났다. 만약, 레이 찰스가 250곡을 청음에 의지해서 들었다면, 12곡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명반을 만드는 데에는 좋은 음악도 있었지만, 촉각으로 빠르게 음악을 훑을 수 있는 점자악보의 역할도 컸으리라 생각된다.

본지는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음악 점역을 하는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와의 취재를 통해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이 사용하는 점자악보와 그것을 제작하는 음악점역사에 대해 소개해 보려 한다. -배재민 기자

 

시각장애인 ‘레이 찰스’는 어떻게 세계적인 음악가가 됐나

 

손으로 읽는 음악,

점자악보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읽는 객관적 정보

 

시각장애인들은 눈으로 악보를 볼 수 없으니 촉각에 의지한 악보가 필요하다. 촉각으로 읽을 수 있는 악보가 점자악보다.

점자악보가 없으면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은 청음에 의지해 연주해야 한다. 만약, 레슨 선생님이 있는 경우, 선생님은 구술로 음악을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연주자들은 레슨 선생님이 해석한 연주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점자악보는 연주자가 직접 손으로 악보를 만지면서 음악을 일차적으로 느끼고 본인이 연주할 곡의 객관적인 정보를 준다.

 

음악점역사란?

묵자악보를 점자로 점역하는 사람들은 음악 점역사라고 부른다. 음악점역은 한글 점역과는 많이 다르다.

점자는 여섯 점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같은 점 하나라도, 한글, 수학, 영어, 컴퓨터 언어 그리고 음악 등이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음악도 한글점자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음악점자가 있다. 이는 한글점자와는 다른 언어다.

그렇기에 음악점역을 하려면 한글점역교정사 자격증은 필수로 취득해야 한다. 또한, 점역하는 악보의 대부분이 영어로 쓰였다 보니 영어점역사 자격도 취득해야 하며 당연히 음악점역사 자격도 취득해야 한다.

점자악보를 교정하는 이한미 음악점역사와 시각장애인 연주가
점자악보를 교정하는 이한미 음악점역사와 시각장애인 연주가

 

점자악보가 만들어지는 과정

 

제작하고자 하는 악보를 입수하면 점역사들이 먼저 작업에 들어간다. 일차적으론 악보 해석을 한다. 음악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모든 악기의 악보를 파악할 수 없다. 모르는 영어들, 해석이 난해한 악보도 많다. 악보를 그대로 점자로 변환하지 않고 시각장애인들이 연주하기 쉽게 해석을 해서 점역을 한다. 음악점자 규정에 없는 기호들도 있다. 그런 경우 점역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 점역을 만들고 주석을 다는 작업을 한다.

1차 점역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한글이나 텍스트들은 점자로 즉각적으로 변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점역할 문장을 치고 엔터만 누르면 천장이 넘는 페이지가 몇십 초 내로 변환이 된다. 하지만 아직 악보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 악보 점역의 실수가 치명적인 이유는 이용자들이 뜻을 유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은 실수가 있어도 띄어쓰기나 앞뒤 문맥을 통해 틀린 부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악보는 솔을 찍어야 하는데 도를 찍어버리면 시각장애인 이용자들은 그저 작곡가의 의도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각장애인 연주자와 담당 점역사가 1대1로 묵자악보와 점역악보를 비교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작업을 한다.

그렇게 교정작업이 끝나면 베테랑 점역사들이 검수를 시작한다. 검수가 끝나면 출력을 하고 공급에 들어간다.

클래식 피아노 기준 난이도 ‘상’ 정도의 악보 10장은 점자로 세배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 다른 업무를 제외하고 순수 작업만을 따져 걸리는 시간은 약 2주 정도다.

 

음악점역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의 하은주 음악점역팀장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하은주 음악점역팀장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1999년 개관하면서 점역 사업을 시작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중요한 것이 점자와 보행이니 학습지원의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음악을 전공한 점역사들이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음악점역 사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2009년 세계 최초로 음악점역센터를 개설하고 2012년에는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를 설치했다.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이하 센터)의 하은주 음악점역팀장은 “1999년 처음 음악점역 사업을 시작할 땐 우리가 해외에 부탁했다. 2009년 음악점역센터를 개설하며 복지는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음악점역으로 복지 수출을 역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꾸준히 실로암센터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연주가들이 있다. 처음 센터를 개설할 때 해외로도 홍보를 많이 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중국, 미국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쪽으로 우리가 홍보를 많이 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홍보를 하니,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검색해서 우리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미국 국회도서관 같은 경우는 우리가 여러 차례 연락해서 그런지 미국의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에게 따로 우리에게 연락을 해보라는 말도 한다. 현재 꾸준히 센터를 이용하는 해외 이용자들은 10명 정도다. 학업을 준비하는 분들부터 연주자, 지휘자, 작곡가들도 있다.”

실로암센터는 한 달 기준 약 50개의 악보 의뢰를 받는다. 순수하게 이용자의 부탁도 있고 자체 기획도서도 제작한다. 연간 500권의 악보를 찍는 것이 센터의 목표다. 그렇기에 점역사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은주 팀장은 음악점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점역의 정확성”이라고 설명하며 “점역이 틀릴 수도 있다. 독주일 경우에는(물론 이 또한 틀리면 안 되지만) 전문가 아니면 잘 못 알아채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합주일 경우에는 다들 같은 음을 연주하는데 한 명이 잘 못 연주하면 티가 난다. 점역사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점역사의 이름을 걸고 하기에 신입 점역사들에겐 느리더라도 정확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중에선 점자를 읽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점자가 아닌 청음으로 음악 작업을 하는 시각장애인 음악가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자악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은주 팀장은 이에 대해 악보는 “곡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음악은 분야가 다양하다. 클래식, 국악, 실용음악 등등. 이 모든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을 다 합치면 점자악보를 보지 않는 음악가들이 많을 수도 있다. 실용음악은 연주보단 창작과 편곡이 중요하니 어떤 곡을 커버하더라도 구성과 편곡이 많이 달라진다. 국악은 아직 점자가 미미하다. 하지만 클래식은 정확함을 중요시한다. 적확하게 클래식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에는 악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클래식 하는 분들이 점자악보를 많이 본다.”

하은주 팀장은 이어 안타까운 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요즘은 맹학교에서 음악점자를 잘 안 가르친다. 인력도 없다고 들었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시각장애인이 선택하는 직업 중 안마가 제일 크다. 전문연주자들은 소수다. 하지만 분명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점역악보가 필요하다.”

센터는 500종 이상의 악보를 제작하며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시각장애인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무료로 악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음악점역은 내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이한미 음악점역사

실로암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 이한미 음악점역사

 

이한미 음악점역사는 2012년부터 음악점역을 시작해서 벌써 9년 차다. 그는 성악을 전공하고 음악점역계로 뛰어들었다. 같은 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직종이지만 점역과 성악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된다. 음악점역 자체도 대중적인 직업이 아니기에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취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성악으로 꾸준히 한길을 가는 건 쉽지 않다. 좁은 길이다. 그러다 다른 직종을 생각하다 음악점역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도 시각장애인이어서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또한, 점자악보를 제작하는 것이 내가 가진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이어 “할머니가 시각장애인이지만 중도 시각장애여서 점자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세세한 부분은 센터에 취업하고 나서 처음 배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늘 어렵다.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한미 점역사 또한 “업무적인 것은 어디든 처음엔 어려우니 특별히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이한미 점역사는 이어서 처음 점역을 할 때의 느낌에 대해 묘사하며 현재와 비교했다. “점자가 언어가 된다는 게 신기했다. 한글점자와 음악점자를 같이 공부했는데 이게 언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어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가 안 나니까 답답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다. 익숙해지는 것도 외국어랑 비슷하다. 숙련도가 더해지며 이제는 생각도 하기 전에 바로 점역이 된다. 보자마자 변환이 되는 것이다.”

익숙해도 늘 어려운 것은 있다. 9년 차, 한 달간 약 10권 정도 작업을 하는 이한미 팀장에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아직 악보의 기호들이 규정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며 “기호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자문을 구하는 부분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모든 직종에는 힘든 점도 있지만, 보람도 있다. 음악점역사에게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악보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점자악보 제작을 하며 의뢰한 당사자들이 받으며 고맙다고 할 때 가장 보람차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시각장애인 연주자,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김예지 의원이 악보 의뢰를 한 적이 있다. 급하게 의뢰를 받았다. 번역 후 연주회 초대를 받았는데 김예지 의원이 우리가 점역한 악보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는데 보람도 느낀 반면 긴장되었다.”

음악점역은 새로운 직종은 아니지만, 여전히 생소한 직종이다. 음악가 중에서도 음악에 관련한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에게 음악점역사란 매력적일 수 있다. 음악점역사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한미 점역사는 소명감이라고 답했다. “음악점역사에겐 정확함와 꼼꼼함이 필요하다. 일하는 소명감이 있는 분들이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살리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분들이 음악점역사를 선택하면 잘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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