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인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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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인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승인 2020.04.24 09:26
  • 수정 2020-04-24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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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임에서 어느 인권활동가가 말했다. “추모가 없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2020년 4월 8일 현재 사망자가 200명이다. 어떤 사건에서 200명이 사망했는데 정부 차원이건 민간 차원이건 추모가 얘기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까. 전혀 예기치 못하게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에 대해 우리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 가족들이 숨죽이고 오열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사망자, 확진자, 격리자 수가 줄어드는 것에는 관심이 가지만 정작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은 생각하지 못한다. 코로나19의 공포에 사로잡혀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비인간화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제앰네스티에서는 3월 초 코로나19와 관련된 국가의 인권의무에 관한 예비보고서를 발간했다. 1) 격리, 2) 여행 금지와 제한, 3) 정보 접근권, 투명성 및 검열, 4) 예방적 보호, 재화와 용역, 5) 비상사태, 6) 보호의 접근성과 비용지불 가능성, 7) 특정 집단에 대한 특별히 불균형한 영향, 8) 사회보장과 노동자의 권리, 9) 낙인 및 차별 방지, 10) 보건인력의 보호, 11) 국제적 협력과 지원, 12) 장기적인 회복과 후속작업 등과 관련된 국제인권기준과 유의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도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다음 주제들에 대해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1) 건강권, 2) 비상조치, 3) 차별금지, 4) 주거, 5) 장애인, 6) 피구금자 및 시설수용자, 7) 정보 및 참여, 8) 낙인, 외국인 혐오주의 및 인종주의, 9) 이주민 및 난민, 10) 사회경제적 영향, 11) 프라이버시, 12) 젠더, 13) 물과 위생, 14) 선주민, 15) 소수민족.

정부는, 그리고 인권을 생각하는 이들은 이들 이슈 중 어느 것 하나 간과되거나 소홀히 됨이 없이 제대로 다루어져 돌이킬 수 없는 인권 침해와 상처가 미연에 방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공포와 불안이 우리를 지배하든 감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 즉 사망자, 확진자, 격리자 등이 항상 주목해야 하고 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는 일차적인 피해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시설격리는 수만 명에 이르고 자가격리 등을 포함하면 수십만 명이 구금 혹은 사실상 구금 상태에 놓였거나 놓이게 된다. 그런데 법에 근거한 강제격리인지, 당사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자발적 보호인지조차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은 채 ‘격리’가 이루어지는 경우들도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을 보면 격리의 기준이 확진 외 ‘인체 침입 의심’, ‘접촉하여 전파될 우려’, ‘감염되었다고 의심’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요건들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법 개정으로 그 범위는 더욱 확대됐다. 격리의 절차도 증표의 제시, 격리의 통지 등이 전부이고 격리자의 처우도 일부 생계 지원이나 입원치료 지원 등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인한 기본권 제한과 관련된 조치의 예로는 3월 21일 15일 간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일부 시설, 업종 운영 제한, 3월 29일 해외입국자 방역관리 강화방안, 2월 26일 고시에 의한 서울시의 도심 내 집회 제한, 3월 7일 고시에 의한 대구시의 도심 내 집회 등의 제한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행정조치의 경우에도 법적 근거 없이 사실상 강제력이 발동되는 경우, 그 강제성 유무가 불분명한 경우가 존재하고 또한 과도한 기준, 일률적인 적용 등으로 구체적인 타당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은 당연히 대두된다. 그리고 그러한 통제가 사회적 연대를 굳건하게 하는 모습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어렵게 쌓아 온 인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얼떨결에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급박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 치열한 과정을 통해 그 균형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개별 조치들이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관련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 다른 덜 제한적인 조치가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정부는 자가격리자를 더욱 철저히 관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자팔찌 도입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불명확하고 사실상 예견 불가능하고 광범위하다고도 볼 수 있는 자가격리의 요건을 전제로 전자팔찌라는 강력한 강제력을 발동하겠다는 것은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 수 있다. 동의를 구한다고는 하나 그 동의가 진정한 의미가 동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전자팔찌의 도입은 그 추구하는 목적과는 반대로 잠재적 자가격리자들로 하여금 관련 당국을 피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많다. 이미 법 개정을 통해 자가격리에 관한 지침 위반에 대해 강력한 형사처벌을 도입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고려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는 다를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많은 이슈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그 누구도 모든 이슈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비상상황의 긴 터널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이가 없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우리가 발전시켜 온 소중한 가치들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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