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에 담긴 의미까지 전달할 수 있는 통역사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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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속에 담긴 의미까지 전달할 수 있는 통역사 되고 싶어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0.02.05 10:01
  • 수정 2020-02-10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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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심호 수어통역사 / 인천광역시수어통역센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어 표현인 '꽃'을 수어로 전하는 육심호 통역사. 봉오리에서 꽃잎이 펴치는 모습을 형성화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어 표현인 '꽃'을 수어로 전하는 육심호 통역사. 봉오리에서 꽃잎이 펴치는 모습을 형성화한 것이다.

처음은 수능점수에 맞춰 입학했던 수어통역학과였다고 한다. 우선 입학을 한 후 일정 기간을 채우고 나면 전과를 하는 것이 목표였던 육심호 통역사는 어느새 새내기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육심호 통역사의 마음을 움직인 건 우연히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만난 청각장애인과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웨딩홀 아르바이트를 간 적이 있어요. 누군가의 칠순잔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홀 서빙을 하고 있는 제 눈에 계속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한 남성분이었는데, 모두가 잔치를 즐기고 있는데 혼자서만 아무 표정 없이 앉아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다가가 도움을 필요하냐고 물으니 옆에 계신 어머님께서 제게 그분이 청각장애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죄송하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수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니 그분이 반가워하며, 잔치가 진행되는 내내 제게 웃으며 말도 걸고 하셨거든요. 그때 홀로 앉아계시던 그분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이고 외로워 보였어요. 그리고 제가 수어로 말을 걸었을 때 웃던 모습을 보며, 수어통역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올해 1월 수어통역센터에 입사한 심호 씨는 말 그대로 새내기 통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운 것이 훨씬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장은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변수가 많다 보니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도 현장활동이야말로 실제 청각장애인들의 생활과 니즈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어렵지만 더 많이 경험하고 싶어요. 그래야 제 실력도 더 늘어날 것 같고요. 또 실제 현장에서 만난 경력이 많으신 통역사분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고, 저분들처럼 수어를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요.”

 육심호 씨는 선배 통역사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으로 ‘표현력’을 꼽았다. 같은 문장과 단어라고 해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통역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어로 노래를 표현하는 행사에서 한 통역사님이 ‘꽃잎이 휘날리며~’라는 노랫말을 수어로 표현하시는데, ‘꽃잎이 날린다’라는 정형화된 문장이 아닌 정말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처럼 수어를 표현하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언어는 달라도 느끼는 감수성은 모두 같잖아요. 청각장애인분들 역시 그 모습을 보며 비장애인들이 노래의 리듬을 듣는 것처럼 느끼는 모습을 보고, 저도 저렇게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닌, 말 속의 감정까지 전하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호 씨는 퇴근 후 집 안에서도 또 근무 외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책도 보고, 길을 가면서 보이는 문장도 연습하고 뉴스를 볼 때도 하단에 나오는 통역사의 모습도 보고 있어요. 앵커가 말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비교도 하고, 그러다가 나는 이렇게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통역사님도 그렇게 하시면 괜히 뿌듯해지기도 하고요.(웃음)”
 

 육심호 통역사는 차곡차곡 경력을 쌓은 뒤에는 법률전문 통역사로 활동하는 것이 목표지만, 그보다 먼저 ‘답답하지 않은 통역사’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단순히 농인들의 말을 통역하는 것이 아닌 말 속에 담긴 그들의 속뜻과 감정까지 이해할 수 있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제가 외국에 나가서 어떠한 일에 처했어요. 그래서 저를 도와줄 통역사를 만났는데, 그분이 제가 하는 말을 단어로만 듣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답답할까요? 농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화라는 건 단어와 문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주고받는 거잖아요. 저 역시 그분들의 말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생각과 감정까지 듣고, 전달하는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심호 씨는 우리 사회가 농인들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제가 지하철에서 연습겸 또는 지인과 수어를 하고 있으면 다가오셔서 제 손을 잡고 ‘말로해, 연습하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아직 계세요. 청각장애인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계시지 못한 거죠. 또 길에서 농인분들이 수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고 안쓰럽고 때로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농인분들도 그냥 우리가 그렇듯 서로 대화를 하는 것뿐이거든요. 다른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대화의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육심호 씨는 봉우리에서 활짝 꽃잎을 펼치는 모습을 형성화한 ‘꽃’의 수어표현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어를 하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그가 표현하는 꽃과 닮은 모습이었다.
 

 심호 씨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 오랜만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색 눈송이를 보자, 다시 한번 심호 씨가 보여준 ‘꽃’의 모습이 그려졌다. 통역사로 조금씩 더 발전해 나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그의 앞날에 꽃길만 이어지길 응원한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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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5 22:42:08
새내기가 베테랑이 되길 저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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