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지팡이로 세상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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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지팡이로 세상의 길을 열다
  • 김호일/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
  • 승인 2019.11.08 09:18
  • 수정 2019-11-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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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15일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년 10월 15일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orld Blind Union)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권익옹호와 복지증진을 위해 이날을 ‘흰지팡이날’로 선포하였다. 선포문에서는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고 활동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이자 자립과 성취의 상징’임을 강조하고 아울러 전 세계의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과 정부는 이날을 기해 시각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행사와 일반인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계몽을 적극 추진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에서는 전국 각지의 시각장애인에게 인천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올해 개최되는 ‘제40회 흰지팡이날 기념 전국시각장애인복지대회’를 인천에서 개최하기로 연초에 확정 짓고 연합회 산하에 있는 인천시 관내 시각장애인복지 관련 기관들을 중심으로 TF를 구성하여 매주 회의를 통해 준비하고 2019년 10월 15일 인천서구아시아드 경기장 남측광장에서 기념식을 통해 시각장애인 복지증진에 기여한 유공자들에 대한 표창과 인천의 특색을 살린 각종 경연대회 및 전국 각지의 시각장애인들이 각 시도를 대표하여 자기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연하는 ‘둘이서 한마음 노래자랑’을 통해 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아울러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일컬음을 받는 고(故) 송암 박두성 선생의 고향이 인천 강화 교동인 만큼 이번 기회에 한글점자 ‘훈맹정음’ 창제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킬 수 있는 홍보부스 마련과 더불어 ‘자립과 성취’의 상징인 흰지팡이의 변천사를 전시할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지난 9월말 경기도 접경지역 및 강화지역에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병으로 국가적 재난에 준하는 중대한 사안임을 감안하여 보건복지부 및 인천광역시와의 협의를 통해 ‘제40회 흰지팡이날 기념 전국시각장애인복지대회’를 부득이하게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필자도 행사 TF의 일원으로 열성을 다해 준비해 왔고 특히 이번 기회를 통해 복지도시 인천, 훈맹정음 창제도시 인천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되는 점이 무척 아쉬웠지만 축산농가에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행사를 취소하게 되었다.

흰지팡이는 장애 특성상 이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이 길에 나설 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보행할 수 있는 도구로서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으며, 그 후 영국과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31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개최된 국제라이온스대회에서 흰지팡이의 기준이 설정되었고 그 후 미국의 페오리아시에서 개최된 라이온스클럽대회에서 ‘페오리아시에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흰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흰지팡이에 대한 최초의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지금의 흰지팡이는 1946년 미국의 밸리 포지(Valley Forge) 육군병원의 안과의사 후버(R. Hoover)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후버는 길이 117cm, 지름 1.27cm, 무게 170g의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제작하고 그 사용법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흰지팡이에 대한 규정은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 마련되었으며 현행 도로교통법 11조 ②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49조 ①에서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운전자들은 이 규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차도와 인도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이면도로 등에서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등록 시각장애인은 약 25만 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구의 10%에 가깝고 인천광역시의 경우 등록 장애인(2019년 9월말 현재) 14만3863명 가운데 1만3773명으로 비슷한 추세이나 시각장애인 대부분 중도실명으로 나이가 들어 시각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러한 특성이 시각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 판정을 받게 되면 점자 기초교육과 흰지팡이 보행을 교육을 통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다시 배우게 된다. 그러나 중도실명 시기가 노년층에 많고 장애로 인한 큰 상실감은 세상과 벽을 쌓고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 더욱이 우리 사회환경이 시각장애인이 안심하고 걷기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아직도 많다.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도처에 널려 있는 볼라드는 물론, 제대로 설치 또는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점자블록과 예산상 대부분 설치되지 않은 음향신호기와 점자표지판 등 헤쳐 나갈 일이 참 많다. 바라기는 이번 제40회 흰지팡이날을 계기로 인천지역 시각장애인들만이라도 흰지팡이가 세상의 길을 여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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