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속의 장애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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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속의 장애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 박윤하/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 승인 2019.10.11 09:19
  • 수정 2019-10-1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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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장애를 무엇으로 여기는가? ‘장애’를 담은 대중매체를 보면 사회가 장애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매체가 장애를 그려내는 방식은 곧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미디어를 거쳐 갔던 여러 장애인상을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는 장애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왔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장애문화’를 향유해 나가야 할지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역사 속의 많은 매체에서 장애인을 혐오스러운 존재, 즉 순전한 악(惡)으로 여겨왔다. 동시에 장애인을 악의 존재로 상정하여 독자 혹은 시청자가 캐릭터에 이입하는 원천을 차단하고 장애인 캐릭터를 두려움의 존재로 박제한다. 영화 ‘300(잭 스나이더, 2006)’의 지체장애인 등장인물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인 ‘300’은 전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지체장애인 에피알테스는 극중에서 배신자와 괴물로 다뤄진다. 영화 속 장애인의 신체상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연상되는 시각적 묘사와 함께 해당 캐릭터의 극중 역할은 ‘배신자’이다.

장애인을 순전한 악으로 상정하는 고리타분한 방식의 묘사가 비단 옛날의 것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많은 언론은 정신장애인을 악마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실제를 따져보자면 조현병 환자가 범죄자가 되는 비율보다 여성장애인이 비장애인 남성에게 범죄를 당하는 비율이 훨씬 많을 뿐더러 조현병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단정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복합적인 환경요소들, 그 요소들의 상호 교차성을 전부 제하고 오직 장애에만 모든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장애인은 나쁘다’라는 말만큼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은 ‘장애인은 착하다’이다. 장애를 순전한 선(善),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수많은 신파 영화들이 이에 해당한다. 감동적인 장면을 추가하여 그럴듯한 서사를 구성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치트키가 있다. 주인공이 길거리에서 곤경에 처한 청각장애인에게 능숙하게 수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더니 뜬금없이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의 가족으로 등장하면 된다. 장애인의 등장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길고 복잡한 인생 가운데 단단히 얽히고설킨 장애라는 주제를 그 상태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 한 부분만 억지로 떼어내 전시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으나 희화의 대상으로 만드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80년대 등장한 ‘바보 영구’ 캐릭터는 현재까지도 많은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변용되어 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구 캐릭터는 동네 바보 형을 보고 웃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바보 흉내를 내는 유명 연예인을 바라보며 마음껏 웃는 사람들의 세상에는 지적장애인이 단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선과 악, 희화 혹은 동정의 대상에서 벗어나 보다 색다른 방식으로 장애를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인간승리의 장면이나,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강점을 살려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인물들이 연출되었다. 장애인 캐릭터를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 감정을 일으키도록 하는 전적인 타자로 상정했던 시각에 비해서는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장애인의 ‘무능력’에만 초점을 두었던 앵글을 돌려 장애인의 성장 가능성을 비추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역시 앵글의 편향된 방향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장애인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특별히 그 성공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도대체 어떤 장애인을 내보내야 하는가?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맞다. 위에서 언급한 장애인상의 공통점은 장애인을 천편일률적인 존재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감동적인 스포츠 경기의 한 장면을 봤다고 모든 스포츠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스릴 넘치는 의학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면 새로운 줄거리의 의학 드라마를 기대한다. 장애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어선 안 된다. 수많은 영화가, 드라마가, 소설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가운데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의 인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에 함부로 짐작하거나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인물의 인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같은 모양의 인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대중매체 속의 객체로 전락했던 장애인의 존재가 다시 주체의 권위를 회복하여 우리 사회의 ‘장애문화’를 선두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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