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 뺏는’ 복지급여, 목숨까지 뺏어서야
상태바
‘줬다 뺏는’ 복지급여, 목숨까지 뺏어서야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9.09.20 09:22
  • 수정 2019-10-10 1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서울 강서구에서 50대 남성이 기초생활수급자인 병든 80대 노모와 50대 중증지체장애인 형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빈곤에 허덕이며 가족의 간병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원인이 크다고 하겠다. 특히 제 아무리 각종 명목의 복지급여를 제공하더라도 현행의 ‘줬다 뺏는’ 복지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이 같은 참극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빈곤으로 인한 거듭되는 비극을 끊어 내려면 사회안전망 강화는 물론 복지급여제도의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사건의 노모와 장애인 형은 2000년 9월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다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국민연금까지 받았지만 한 달 총 수급액이 1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 받을 수 있는 급여는 다 받았는데도 이 가정의 생활고는 나아지 않았다. 연금 등이 소득인정액으로 잡혀 생계급여에서 깎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매월 71만여 원이 삭감됐다고 한다. 부양의무제도도 삭감 요인이 됐다. 동생이 노모와 형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었지만 부양비를 대주는 것으로 추정해 그만큼 복지급여를 떼 갔다. 노모는 장기요양서비스를, 장애인 형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았지만 24시간 서비스가 안 된 것도 문제였다. 부양의무제만 피했더라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줬다 뺏는’ 복지급여제도가 비극을 초래한 셈이다.

‘사후 약방문’이랄까. 잇따른 빈곤층 사망사건에 정부가 이번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에 근로소득 30% 공제를 적용하고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을 때 부양의무자 소득과 관계없이 생계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 또한 근본적 구휼대책으로 보긴 어렵지만 이런 대책을 조금만 일찍 내놨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2018년 기준 장애인취업률은 36.5%인데 중증장애인은 겨우 25% 수준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평균소득이 50만원인 현실에서 생계를 꾸려갈 재간이 없음은 당연하다. 장애인이나 극빈층에게 노동이 절실하지만 일을 하게 되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에서 탈락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길은 없다.

이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철이 다가왔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보면, 기초생활보장·기초연금 확대, 한국형 실업부조 등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위해 복지·고용 부문의 예산이 181조원대로 잡혀 있다. 그런데,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예산 증액 말만 나오면 재정 탓으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책정만 해 놓고 쓰지 않은 불용예산은 지난해만 8조6000억 원에 달한다. 2016년 11조원, 2017년 7조1000억 원으로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이 사실상 생색용으로만 잡힌 채 불용되고 있는 꼴이다. 이 같은 정부의 행태가 한정된 복지재원에 부실한 복지급여 운용을 불러온 셈이다. 매년 수조원의 불용예산이 적재적소에 배정돼 지급됐다면 ‘줬다 뺏는’ 복지급여는 없었을 것이며 강서구에서와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임우진 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