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일상이 조형물을 통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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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일상이 조형물을 통해 만나다
  • 배재민 기자
  • 승인 2019.04.23 11:08
  • 수정 2019-11-27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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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종선 작가는 시청역 지하차도 위에 휠체어의 형상을 한 붉은 거대 풍선을 설치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장애인의 이동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오종선 작가-420공투단

장애인이동권 보장 위한

‘장애인차별철폐전(展)’

서울 세종프레스센터 앞서

일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부분의 일상은 무난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그런 일상이 보편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일상은 다르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의 말에 의하면 장애인들은 “서울 시내에서 간단한 이동조차 목숨을 걸어야하는 상황”이 일상이라고 한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의 일상은 초현실적인 감각의 비일상이다. 17일, 서울시 시청역 1호선 세종프레스센터 앞에서 오종선 작가와 420장애인차별철페공동투쟁단(이하 420공투단)은 비장애인의 일상 앞에 장애인의 일상을 조형물로 선보였다.

오종선 작가는 2005년부터 한국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조각, 설치, 퍼포먼스로 꼬집는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떡값전(2007)’, ‘장준하전(2012)’, ‘장자연전(2018) 등이다. 그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표현하는 예술가다.

오종선 작가는 이날 한 시간 동안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가로 260cm, 세로 420cm의 붉은 휠체어를 시청 지하차도 출입구에 설치했다. 붉은 거대 휠체어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덜 날카로운 인상이다.

“예술가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사회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 저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게는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오정선 작가를 생각하면 정치적인 메시지를 주는 작품들이 먼저 떠오른다. 기자의 기억으론 약자에 관한 작업은 그의 초기작인 노숙자의 신성을 다룬 ‘칼잠예수(2005)’ 이후 오랜만의 작업처럼 보였다. 작가의 작품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일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의 작품을 보고 정치적이라고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꾸준히 약자들에 대한 작품도 해왔습니다. 스펙트럼이 넓어진 게 아닌 제 스펙트럼의 일부입니다.”

그는 이어서 “이번 작품은 10여 년 간 구상했습니다. 사람들은 한국이 이제 선진국이라고 말합니다. 매체에서도 연일 그렇게 얘기하죠. 하지만 약자를 신경쓰지 않고 보듬지 않는데 선진국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비장애인)에게 이동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위험합니다. 휠체어로 대변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커다란 풍선으로 표현하려 했습니다.”라며 작품 설명을 했다.

지하차도 계단 위의 거대 조형물은 이동하는 시민들에게 얼핏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위압감은 없었다.

“풍선으로 만든 조형물은 에어 조형물이라고 부릅니다. 풍선을 사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안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부딪혀도 다치지 않습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말하면서 시민들의 이동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풍선 휠체어는 지상에서 봐도 좋지만 가장 흥미롭게 보려면 지하차도 밑에서 봐야 한다. 지하차도 밑에서 계단 가 쪽으로 올라오던 시민들이 작품에 부딪히면 처음엔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자신과 부딪힌 풍선을 보고, 풍선을 따라 위를 본 후 지하차도를 나와서 전체를 보게 되는 동선이다. 혹은 부딪히지 않더라도 밑에서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 구조가 위로 올라와서 전체를 보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시민들이 오다가다 이 휠체어를 보고 ‘왜 휠체어가 저기 있지?’ 하고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는 빠름의 시대다. 시청역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붉은 휠체어 밑으로, 옆으로 사람들이 바삐 지나간다. 그 중 몇몇은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빨간 휠체어를 바라본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 들어오게 된 휠체어. 사람들은 휠체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술은 그렇게 사람들의 발을 멈추고 타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할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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