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장애인복지 정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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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장애인복지 정책이 필요합니다
  • 편집부
  • 승인 2019.03.22 09:33
  • 수정 2019-03-2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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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백/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2019년 장애인복지제도의 가장 큰 변화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예산 확대이지 않을까 싶다. 이 두 가지는 장애당사자와 부모들의 오랜 운동의 결과다.

장애등급제는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슈다. 한 장애인의 서비스를 장애등급에만 맞추어 지원한다는 것은 비인권일 뿐더러 장애인의 자립생활 패러다임과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장애인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오로지 장애등급에만 맞추어져 서비스 제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운동 진영의 예산 확대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무늬만 폐지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꾼 꼴이다.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예산 확대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다. 장애인 부모들의 오랜 활동으로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작년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고,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로 부모 및 당사자를 초대하였고, 발달장애인과 관련해서 국가의 지원을 확대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장애부모들의 오랜 요구에 대해 턱없이 부족한 주간활동서비스 대상 인원과 비현실적인 제도 설계로 또 한 번 부모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였다.

운동 진영의 요구에 대해 정부가 화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결과는 왜 나타났을까? 그나마 시행되는 제도들은 현장의 요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는 제도 설계자인 보건보지부가 장애당사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설계하는 제도들은 단순히 숫자와 그것이 소비되는 대상자로만 인식되기 때문은 아닐까.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고, 예산의 집행이 효율적이고, 투명할까만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요구를 받는 척하고, 전혀 상관없는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정책에는 사람이 없다. 그저 대상자이다. 부정수급을 할까 봐 전전긍긍 감시의 대상자이다. 지역사회가 안전하지 않아서 그저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자이다. 낮에 어떤 활동을 하는 것보다 그저 주간보호센터만 다니면 되는 대상자이다. 최저 임금보다 낮게 급여를 주어도 되는 대상자이다. 장애인복지기관에서 그럴싸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면 자신의 욕구와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들어야 하는 대상자다.

제도의 수혜자는 사람이다. ‘1+1=2’가 되는 수학 공식이 아니라, 그리고 기름 ‘1L’를 주입하면 얼마를 가는 자동차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만들어내는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장애가 있어서 수십 년 동안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지만, 내일은 내 방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맘껏 먹어 보고 싶은 사람이다. 내 자녀가 자폐성장애가 있지만, 낮에 오갈 데가 없어서 집에만 있지 않고, 어딘가에서 자신의 몫만큼 활동하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다. 지금은 너무 가난해서 정부에서 생활비를 받지만, 내일은 어느 직장에서 일해서 나의 임금을 받아서 당당하게 사회의 한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지금, 당장 정부의 예산이 증액되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된다. 이런 현실이라고 한다면, 제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화려한 레토릭을 담는 말들이 아닌,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방향성을 담는 정책이 필요하단 말이다. 보건복지부 공무원한테는 단지 예산을 늘리고 줄이고 하는 것이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삶을 보듬어 주는 장애인복지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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