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체험과 장애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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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체험과 장애체험
  • 편집부
  • 승인 2019.03.08 09:59
  • 수정 2019-03-0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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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시각장애인, 한빛맹학교 교사

‘병영캠프’라는 것을 갔던 적이 있다. 남자라면 대부분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은 게 군대라지만 그것마저도 갈 수 없다 판정 내려진 시각장애인에겐 부러움이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해병대 캠프에 가서 바다 한가운데 던져지기도 하고 경찰특공대에 가서 레펠에서 낙하훈련도 받았다. 35도 넘는 땡볕에서 완전군장 메고 4㎞ 달리기도 하고 총 비슷한 것도 쏘아보았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경험도 했지만 기껏해야 다 합쳐도 2주도 안 되는 시간은 의무병들의 2년여 병영생활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짧고 작은 시간이었다. 나 나름으로는 힘든 경험도 했고 무언가 크게 느낀 바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건 분명히 전체 군대생활의 빙산의 일각임을 알기에 친구 녀석들의 술자리 군대 이야기엔 언제나 입을 꾹 닫고 아쉬운 침묵을 지킨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장애체험이라는 것을 한다. 내가 군대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도 있는 듯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보겠다는 선한 의지 같은 것도 있는 듯하다. 휠체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기도 하고 안대 쓰고 지팡이를 짚고 길을 찾아보기도 한다. 한쪽 팔을 묶거나 귀를 꽉 막고 생활을 하기도 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그렇게 느끼듯 체험이 시작되면 어떤 사람들은 궁금한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큰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얼마 전 보게 된 인식개선 동영상 속의 사람들도 그랬다. 안대 쓰고 밥을 한 끼 먹어보겠다는 사람들의 표정엔 환한 웃음도 있었고 왠지 모를 무서움의 감정도 들어 있었다. ‘내가 눈이 없이도 스스로 음식을 집어 먹을 수 있을까?’ ‘안대를 쓰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혹은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느끼던 사람들은 식사가 끝나면 약속된 듯 비슷한 감정들을 쏟아낸다.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 줄 처음 느꼈어요.” “앞으로는 장애인들을 만나면 열심히 도와야겠어요.” 영상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한 여성분이 인터뷰는 그 모든 감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저는 당연히 시각장애인들도 쉽게 밥을 먹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든 식사를 하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난 체험을 기획한 사람들이나 참가를 결정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들은 분명 서로를 좀 더 알고 함께 하는 방법을 만들어 보고자 계획을 세우고 그런 시간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느낀 감정들은 시각장애인인 나의 삶과는 크게 관련도 없고 그들이 의지를 다지는 결심들도 나 같은 사람들이 바라는 배려와는 큰 거리가 있다.

난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식사를 하는 것에 그다지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낯선 식당 새로운 환경들을 굳이 만들어 놓는다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눈물을 이끌어 낼 만큼 나의 식생활이 역경과 고난의 시간들도 아니다. 만약 내가 엊그제 실명을 한 사람이라면 체험자들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하루에도 세 번씩 한 달이면 백 번쯤 눈을 사용하지 않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반복 훈련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열흘쯤 병영체험 한 내가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에 감히 끼어들지 못했던 것처럼 한 끼의 체험 식사로 장애인들의 삶을 단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친구들의 군대생활은 숱한 어려움과 불편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내가 며칠의 캠프 동안 느낀 것들도 그 녀석들 중 누군가는 잠시 느낀 감정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나의 적은 시간들이 친구들의 모든 군생활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한 끼의 식사로 하루의 체험으로 서로를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알게 되었을 뿐이고 조금 더 가까워졌을 뿐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름들이 공존한다. 남성과 여성이 살고 있고 이성애자와 성소수자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인종들도 험께 살고 결이 다른 이념들도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 각자 소중한 개인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름에 대해서도 부단히 알아가고 공감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병영체험도 장애체험도 여성체험도 임산부체험도 난 매우 소중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작은 노력일 뿐 한 번의 짧은 시간들로 상대를 모두 알았다는 전문가적 오만함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나와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다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제의 나의 행동도 후회하고 몇 년 전 내 생각들도 동의하지 못하는데 내가 다른 이들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인 것이다. 세상은 넓고 가치도 존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는 대립과 혐오를 지양하고 상생과 협력 그리고 함께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해 부단히 서로를 배려하고 공부해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이 시간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경험해야 한다. 다만 완벽히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했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그들이 먹고 싶은 메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어보는 것이다. 군대생활이 궁금하다면 군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장애인을 돕고 싶다면 여성을 배려하고 싶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겸손하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고 말한다면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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