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자는 자동차 타지 말라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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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는 자동차 타지 말라는 법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9.02.12 09:27
  • 수정 2019-02-1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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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아/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거의 10년 전 일이다. 한 소녀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가 홀로 키워주시는데 직장을 잃고 정부지원을 신청했으나 낡은 봉고차가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어 생활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소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공적인 자리에서 모녀의 사연을 소개한 얼마 후 모녀는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봉고차를 처분함으로써 수급자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은 가난한 국민을 따뜻하게 챙겨주는 대통령의 미담으로 떠들썩하였다. 대통령이 신경을 쓰면 자동차도 잘 팔리는 모양이다.

소녀가 낡은 봉고차 한 대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기초생활보장법은 재산으로부터 실제로 얻는 소득과 별개로 재산의 가액에 일정한 비율을 곱한 값을 소득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예금이 있는 경우 실제로 받는 이자는 당연히 소득에 합산된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예금가액에 일정한 환산율을 곱해서 산출한 값 또한 소득으로 간주하여 합산한다. 취지는 소득은 없지만 일정규모 이상의 재산이 있는 경우 수급에서 제외하려는 데 있다. 재산으로부터 당장 소득을 얻고 있지 않더라도 환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환산율은 재산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주거용 재산인 경우 일정한 한도까지 월 1.04%, 금융재산은 월 6.26%, 그 외의 재산가액은 월 4.17%를 적용한다. 그런데 자동차는 월 100%의 소득환산율이 적용된다. 가액이 200만원인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월 200만원의 소득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 소득인정액 계산방법

(질문) 저는 4인 가구로 서울에 보증금 8,000만원에 월 30만원 하는 월세에 살며 매월 15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해약환급금이 200만원인 보험과 1,600cc 중고 자동차(차량가액 500만원)가 있고, 은행에 1,000만원의 대출이 있는 상태입니다. 소득인정액은 얼마인가요?

 

(답변) 소득인정액 = (소득평가액 + 재산의 소득환산액)이고, 재산의 소득환산액= (재산 – 기본재산액 – 부채) × 소득환산율로 계산합니다.

①소득평가액 : 매월 받는 150만원이 소득평가액이 됩니다.

②재산의 소득환산액(「2018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 156p 및 188p)

주거용 재산 : 임차보증금 7,600만원(주거용 재산이므로 보정계수를 곱해 8,000×0.95 = 7,600만원이 임차보증금임)

[주거용 재산 7,600만원(1억원 이내)-기본공제액 5,400만원-부채 1,000만원] × 1.04% = 124,800원

금융재산 : 보험 200만원 × 6.26% = 125,200원

자동차 : 500만원 × 100% = 500만원

총 합계 : 5,250,000원

따라서, 소득인정액= ①1,500,000원 + ②5,250,000원 = 6,750,000원이 됩니다.<출처: 법제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유독 자동차에 대해서만 월 100%의 소득환산율이 적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에서 찾을 수 있다. 장애인 사용, 생업용 등에 해당하지 않는 자동차를 보유하는 경우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 보장하기 곤란하다는 현재의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월 100% 환산율 적용한다는 설명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어떻게 감히 자동차를 타느냐는 국민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는 나아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상용”하는 경우에도 본인 재산으로 간주하여 100%의 소득환산율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본인 재산이 아닌 것을 본인 재산으로 간주하고, 해당 재산가액을 월 소득으로 간주하는, 이중의 간주를 거쳐서 수급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상용”의 의미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상용한다는 이유로 본인 재산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공감에서 현재 지원하고 있는 사건에서 위 규정이 문제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버지가 소유하는 자동차를 “상용”했다는 이유로 부정수급자로 몰려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안이다. 어머니가 홀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한부모 가정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용”했다는 이유로 본인 재산임을 전제로 소득환산을 하여 소득에 합산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상용”이라고 판단한 사실적 근거 또한 희박하다. 삼중의 간주나 마찬가지다. 형사처벌도 문제지만, 벌금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자동차를 “상용”했다고 간주되는 기간의 급여에 대한 환수처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정서를 이유로 자동차 소유를 금지하는 현 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에 빚을 지는 사람으로 떳떳하지 않다는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헌법에 근거한 국가에 대한 권리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보육지원, 조세감면 등 각종 정부지원에 대한 권리는 떳떳하게 행사하면서 유독 기초생활수급권만은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자동차를 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가 자동차를 소유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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