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시대, 장애인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상태바
장애등급제 폐지 시대, 장애인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 편집부
  • 승인 2019.01.18 09:47
  • 수정 2019-01-18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한진/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교수
 

광화문역 지하도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 2017년 8월 25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하여 장애인단체 대표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었고, 그동안 10차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2017년 12월에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도입․실시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올해 7월 시행을 앞둔 개정 법률의 주요 내용을 보면, 장애인 등록제는 유지를 하되 ‘장애등급’이라는 용어를 ‘장애정도’로 개정하여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할 예정이고, 6등급의 세분화된 장애등급 구분은 폐지가 된다. 또한 활동지원, 보조기기, 거주시설 등은 장애등급에 따른 제한 없이 모든 장애인이 신청 가능하되 실제 서비스 필요도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서비스를 지원하는 종합조사를 도입하게 된다.

그러면 필자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관 주도의 일제적인 장애인 등록제의 폐지’와 ‘장애유형의 확대를 넘어선 장애의 사회적 정의’는 둘째 치고, 장애등급제는 올 7월이면 실제로 폐지가 되는가? 아니다. 6등급에서 중증과 경증이라는 두 개의 등급으로 축소가 될 뿐 장애등급제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중증과 경증의 구분은 한시적일 뿐 궁극적으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는 하고 있으나, 근 10년 동안 주장되어 온 장애등급제 폐지의 결과가 이러할진대 과연 이 두 개의 등급은 또 언제 폐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이 두 개의 등급을 언제 폐지한다는 로드맵도 제시된 바가 없다.

그러면 장애등급을 대신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실제로 도입될 것인가?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이 조사표는 기존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보다 오히려 기능제한을 측정하는 접근을 강화하고 있고, 장애인의 욕구나 ‘실제 서비스 필요도’를 조사하는 것과는 무관하며, 장애인의 사회적 환경을 측정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더구나 새로운 종합조사표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의 경우에 월 평균 9.12시간 정도 급여가 감소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한 장애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운 서비스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기존 서비스의 양도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등급제를 “진짜로” 폐지하라는 투쟁을 선포하며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된 예산의 확대를 정부에 요구하는 지금의 모습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만 확대되면 기존의 6등급이 2등급으로 바뀌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제안된 종합조사표가 기존의 인정조사표의 미시적 변화에 불과하다면, 진정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평가하고 이와 더불어 장애인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는 변혁적인 측정도구가 개발되어야 한다. 나아가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양만큼 제공하려면 전달체계의 대대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애등급제 폐지 시대에 장애인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본 필자는 장애등급제가 실제로 폐지되는 것이 아니니 장애인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만일 장애등급제와 관련하여 무엇이 미시적으로 변화한다 하여도 이에 대하여 준비하고 적응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준비’가 아니고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요구’이며 건설적인 ‘대안의 제시’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