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18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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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18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8.12.07 13:20
  • 수정 2018-12-07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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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판결, 장애등급 하락 ‘장애변화’ 없는데 사실오인 ‘위법’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018년 장애인 인권과 권익증진에 영향을 끼친 디딤돌 판결 8건, 걸림돌 판결 3건을 선정해 지난 11월 20일 이룸센터에서 열린 ‘2018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보고회’를 통해 공개했다. 선정판결은 2017년 6월부터 2017년 5월말까지 장애인이 소송의 당사자이거나 장애와 관련된 사안이 주요하게 다뤄진 판결을 대상으로 했다. 

걸림돌판결, 지적장애여성 대상 성폭력피고인 위계행위 불인정 

장애등급 결정취소처분 위법 판결

<디딤돌 판결>

올해 장애인인권 디딤돌 판결에 선정된 대구지방법원의 장애등급 결정취소처분 위법 판결은 장애등급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수급권에 제악이 생기고 생활상의 큰 불편을 겪게 된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이 하락할 만한 신체적 변화가 없다며 사실을 오인한 위법성을 인정했다.

원고는 2013년 2월 대구광역시 달성구청으로부터 뇌전증(간질) 3급의 장애등급 결정을 받아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피고 달성구청은 지난 2016년 2월 장애등급 재판정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에 원고의 장애정도에 대한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국민연금공단은 다음 달 원고의 장애등급을 뇌전증 4급으로 판정했다.

원고는 같은 해 6월 피고에게 이의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고 이에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은 “원고의 장애등급을 3급에서 4급으로 하향조정할 정도로 원고의 장애상태가 변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처분은 사실을 오인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디딤돌 판결로 선정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장애등급을 하향 결정한 것은 행정처분 취소와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에 장애상태의 변화, 장애등급을 하향 조정해야 할 공익상의 필요성, 당사자가 입을 기득권, 신뢰보호, 생활상의 안전 침해를 비고형량 하되, 공익상의 이익이 개인이 입을 불이익을 상회할 정도이어야 한다는 일반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제 교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사회보장급여 제공은 장애 정도(등급)나 진단서 등 객관적 자료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 판결은 이런 개별적 사정을 구체적으로 참작해야 함을 확인한 판결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디딤돌 판결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디딤돌 판결로는 △광역버스 사업자가 수동식 경사로가 설치된 버스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것은 차별임을 인정한 판결 △휠체어 승강설비 고장, 사용법 무지, 무정차 통과 등의 이유로 승차 거부한 것은 차별임을 인정한 판결 △시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 관람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은 자막, 화면해설, 보청기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명령한 판결 △장애인학대 신고인의 신고행위에 그에 따른 제보, 채증행위는 제도개선과 학대 재발방지라는 공공의 목적성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 △난민인정자는 관계법령에서 별도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 판결 △당사자의 신체적 상태, 생활에서의 제약 정도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공단의 장애등급 외 결정처분은 위법함을 인정한 판결 △국가공무원 경쟁채용시험 면접과정에서 뇌병변장애인 응시생이 의사소통 조력인 지원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해 불합격 처분이 난 것은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은 차별행위로 위법함을 인정한 판결 등 8개다.

지적장애피해 성폭력특례법 위반 불인정

 <걸림돌 판결>

반면, 걸림돌 판결로 지적장애여성 대상 성폭력사건에서 피고인의 위계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의 판결이 꼽혔다.

원고인 피해자 A씨는 전체 지능지수 54인 지적․정신장애 2급의 여성으로 피고인 가해자 B씨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 B씨는 A씨에게 현금 5,000원을 건네며 “맛있는 것을 사 줄 테니 가자”고 유인했다.

B씨는 A씨가 순순히 따라오자 피해자를 모텔로 데리고 가 현금 3만원을 주면서 “돈을 더 줄 테니 같이 자자”며 옷을 벗기고 간음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5,000원을 건네며 함께 지하철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는 유인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 뿐 그로 인해 피해자가 간음행위 또는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있는 조건에 대해 오인, 착각, 무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을 걸림돌 판결로 선정한 배복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은 “지적장애인의 경우 이번 사례와 같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 없이 유인이나 회유를 통해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위계로써 간음이나 추행은 엄격하게 해석돼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 것이 현실”임을 주장했다.

배 위원은 “성폭력특례법 제6조 제5항의 위계와 위력을 이용한 장애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해석은 문제가 크다.”면서 “향후 유사 판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걸림돌 판결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걸림돌 판결로는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8인 중 7인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 △지적장애청소녀 성폭력사건에서 피해자의 장애에 대한 몰이해로 장애인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 △지적장애여성 대상의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사건에서 피고인의 위계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 이상 3개다.

한편, 지난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는 김모 씨 등 염전노예 피해자 3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원고승소 판결했다.  

처벌불원, 장애인피해자 목적과 취지에

대한 정확한 인지여부 전제로 수용돼야

이어진 장애인분야 공익소송 보고회에서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염전노예사건에서 지적장애인 명의 처벌불원서의 효력을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법적, 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면서 이를 수용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피해자가 장애인인 경우 피해자의 지능, 지적 수준, 발달성숙도 및 사회적응력 등에 비추어 처벌불원의 목적과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나아가 법정대리인 또는 실질적 보호자로부터 처벌불원의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 그 의사표시가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포함됐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최 변호사는 “그러나 염전노예사건의 경우 처벌불원서의 효력유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수사단계부터 반영해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공소권 없다는 불기소처분을 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으며 재판과정에서도 반영돼 공소기각 또는 양형판단에 포함됐다.”며 불만을 표했다.

공익소송 패소 시 비용 부담 커

소송비 감면 등 제도적 대안 필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백지현 간사는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공익소송 중 패소비용이 청구됐던 대표적 사례는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으로 1심에서 패소하자 피고인 신안군청은 원고들에게 600만 원이 넘는 패소비용을 청구해왔다.”고 밝혔다.

공익소송 대부분의 원고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소송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변호사 또한 무료나 소액의 수임료를 받고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거액의 패소비용을 충당하기엔 적절치 않다.

백 간사는 “이러한 공익소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소송에서 졌다는 이유로 감당하기 어려운 패소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평등하지 않다.”며 “소송의 공익적 성격이 인정되거나 당사자의 사정에 따라 소송비를 감면하는 등 제도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공익인권소송비용 부담관련 외국사례 

미국의 경우 원칙적으로 각자 부담주의를 취하지만 입법을 통해 비용에 관한 명령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켈리포니아주의 경우 주법인 California Code Of Civil Procedure 제1021, 5조에선 법원은 소송의 결과로 공공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권리가 실현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승소한 당사자의 소송비용을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토록 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공익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승소했다면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공익을 대변한 결과가 돼서는 안 되며 패소했다면 관련 법률의 의미를 명확히 하거나 공익적이고 중요한 쟁점을 시험한 대가로 벌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패소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만 ‘보호적 비용명령’을 통해 원고의 청구에 따라 사법심사 허가단계에서 법원의 재량으로 원고 패소 시 원고에게 부과된 피고측의 소송비용의 지불의무를 면제하거나 상한을 설정하고 있다.

영국정부의 이라크 파병결정이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한 사건에서 법원은 문제가 공공의 중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원고 주장을 인정하고 패소할 경우 원고가 지불해야 하는 피고측 소송비용의 상한을 설정해 보호적 비용명령을 최초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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