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라는 단어의 의미 다시 생각할 때···시설 폐쇄의 당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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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라는 단어의 의미 다시 생각할 때···시설 폐쇄의 당위성
  • 편집부
  • 승인 2018.11.09 09:43
  • 수정 2018-11-09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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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종선/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대표
 저는 1987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부랑인(아) 단속지침에 의해 국가사업인 사회정화 사업으로 부랑인 수용소에 갇혀 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누나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이제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피해를 당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당사자이며, 현재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 유가족) 모임의 총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피해생존자 한종선이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픈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복지라는 이름을 둘러쓰고 있는 시설들이 과연 시설이용자에게 맞춰진 시설인 것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는 무수히도 많은 시설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있는지 없는지 그냥 있었나보다라고 스쳐 지나듯 관심이 많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설이라는 곳은 어떠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시설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장애인시설을 많이 떠올리실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이 노숙인자립시설, 요양시설, 학교시설, 유치원, 군부대시설, 교도소시설 이런 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왜 장애인시설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그 다음은 왜 노숙인자립시설일까요? 저는 이유를 복지라는 프레임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지라는 포괄적인 개념 안에 나보다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사회적으로 불편을 초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그들은 누군가 관리해야 하고, 보살펴 줘야 한다는 잘못된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지라는 것은 누군가를 차별하라고 지어진 어원은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당연히 존중받고 함께 해야 하는 아주 당연한 권리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복지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무엇인가가 결여된 사람으로 차별 받게 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저는 9살 때 신체 멀쩡한 몸으로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중에 형제복지원이라는 부랑인수용소에서 3년6개월을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12살이 되었을 때 1987년 형제복지원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때 저는 서울 마리아소년의집이라는 시설로 전원 조치돼 대략 4년여를 또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1991년 국민학교 6학년을 졸업도 못한 채 서울에 있는 마리아갱생원이라는 곳으로 또 다시 전원 조치돼 6개월여를 생활하였습니다.
 저는 장애인도 부랑인도 아닌 신체 멀쩡한, 시설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으로서의 시설의 경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시설 관리자의 권리에 맞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를 받아야 했고, 그 틀에 나를 비집어 넣어 그 시설의 규칙에 맞혀야 했습니다. 저는 저의 생을 살아오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자유! 자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민주주의는 무엇일까?였습니다. 나는 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설 안에 갇혀 감시를 받고 구타를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가였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나는 왜 사회 사람처럼 가족하고 살면 안 되는 것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강제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왜 시설이라는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몸이 불편해 보여서? 저런 몸으로 저렇게 느린 행동으로 돌아다니는 게 안타까워서? 
 몸이 불편해도 그들이 불편한 건데 왜 타인이 그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사람을 가둬야 하는가!에 대해 이제 바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란 말은 새장 속에 새를 가둬 두고 하루에 세 번 모이를 주고 먹었으면 배설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생리현상임에도, 새장을 관리하는 자가 냄새 많이 난다며 방치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그 새의 자유롭게 날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새도 키운다고 자랑하듯 하는 그런 행동들이 지금껏 수많은 시설들의 병폐였고 문제였지 않았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시설의 운영방식이 사람을 가둬 두고 먹여주고 보살펴준다는 아주 오래 전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시설은 탈시설을 요구하는 시설이용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 할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왜 시설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오려 할까요?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 시설에서 절차 없이 나올 때 왜 탈출이나 도망 나왔다고 할까요?
 탈출이나 도망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에 쫒기거나 감금당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실행에 옮겨 성공했을 때 사용되어야 할 단어들 아닐까요? 저 역시도 소년의집에서 무수히도 많은 탈출을 했고 도망을 쳤습니다. 나는 왜 쫒기고 감금당해야 했는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실 분 있을까요? 
 안타까워서 불쌍해 보여서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며 ‘시설이라도 들어가지’라고 속으로라도 이야기하시는 분이라면, 스스로에게 누군가 나에게 시설에 들어가서 살라고 강요하면 들어가서 살아가겠는가를 한번쯤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입니다. 몸이 불편해도 그들 또한 사람이기에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시설을 강요하여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이상 시설은 감금의 장소가 아닌 시민들이 공공의 장소로 활용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지라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차별을 두고 선행되는 자선사업이 아닌 모두가 이해하고 인정하고 스스로의 인권신장에 도움이 되는 복지의 단어 쓰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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