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장애등급제 폐지인가?
상태바
누구를 위한 장애등급제 폐지인가?
  • 편집부
  • 승인 2018.10.25 10:46
  • 수정 2018-10-25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홍순봉/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로 하고, 개인별 욕구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누구를 위한 장애등급제 폐지인지 알 수 없다.

 장애등급제는 지난 1988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되어 각종 서비스 지원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이러한 장애등급제는 우리 장애계에 커다란 화두를 남기고 3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된 것은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를 맞이해서였다. 당시 당선 유력 후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도 후보들은 너나없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지만, 어떻게 폐지하고 그 이후 서비스는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이슈가 되어 폐지 확정까지 6년여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정부는 과연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지원에 대해 진지하게 장애계와 소통하였는지 묻고 싶다. 그간의 행태를 보면 몇몇 학자들의 연구놀음으로 전락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9월 3일 선보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 조사표의 평가지표들은 대부분 요양보호가 필요한 대상자들에게 적합한 것이지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겐 매우 부적절한 지표들이다. 정부가 이 조사표를 모든 서비스에 적용하겠다는 것이 진정 맞다면 이는 장애인들로 하여금 집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서비스 급여를 더 주겠다고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은 전혀 하지 말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만약 요양보호를 위한 조사표가 맞다고 하더라도 장애유형별 특성을 반영하여야 하는데, 이 조사표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거니와 모든 장애인을 줄 세워 급여량을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예산 증액은 없으니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메우는 격이라 할 수 있겠다.
 
 더더욱 이번 조사표 작업과정에서 당사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소통해 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민관협의체에 대표단체들이 참여하였으니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표단체들은 이해관계에 놓인 각 당사자단체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전달하는 역할에 불과할 뿐 서비스 이용 당사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전달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만, 장애계와는 소통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지난 8월 초에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안)를 복지부에 전달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수정하겠다는 말만 할 뿐 논의의 장을 만들지 않고 있다. 장애계와 진정으로 소통할 의지가 있다면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길 바란다.
 
 2018년 10월 15일은 39번째 맞은 ‘흰지팡이의 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축제의 날이다. 하지만 2018년의 흰지팡이의 날은 축제가 아닌 씁쓸한 흰지팡이의 날이었다. 흰지팡이는 자립과 성취를 상징하고 있는데, 정부는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저해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내년 흰지팡이의 날에는 흰지팡이가 상징하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진정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