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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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관하여
  • 편집부
  • 승인 2018.05.28 10:23
  • 수정 2018-05-28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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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다큐 어른이 되면 감독 
 만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저마다의 머리 위에 한 가닥 한 가닥 눈에 보이는 선으로 그려져 있다면 어떨까. 한 사람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무수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언제나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자립의 기본 조건이 무수한 의존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식일 것이고,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결코 ‘능력 좋은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구라도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장애를 가지고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효율과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오랫동안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살아남는 것은 어차피 혼자서 하는 일이라는 각자도생의 철학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내 한 몸도 돌보기 힘든 세상에서 상대적 약자를 돕거나 돌보는 것은 ‘가진 자의 여유’이거나 ‘숭고한 희생’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남을 돌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세상이 아니라 나만이 나를 돌보는 세상은 제 아무리 잘난 개인에게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세상 전체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살기 힘들수록 상호 의존과 상호 돌봄은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서로 의지할 때 버티는 힘은 훨씬 더 커진다. 연결과 관계라는 자원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며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간의 촘촘하고 튼튼한 연결은 모두의 삶을 알뜰히 떠받치는 안전망이다. 삶은 곧 연결이고 연결은 삶의 토대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를 시혜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인생을 시작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분명히 태어나자마자 상대적으로 ‘더 살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의 삶을 괴롭게 만드는 원인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기보다 삶의 다양한 존재 양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특정한 삶의 양식만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만들어진 이 사회에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이 세상에서 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든 것은 장애인이 능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세상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비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은 운으로 얻은 것을 장애인들에게는 능력으로 쟁취하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고 차별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신념을 가진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는 명백한 상식이어야 하며 결코 시혜나 호의로 격하될 수 없다. 
 비장애인만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맞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거의 모든 순간을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투쟁을 오롯이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것으로 남겨두는 것은 잔인하며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는 결국 개인과 그 가족을 파괴하고 나아가 그 사회의 인간성 자체를 상처 입힌다.
 약자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약자를 돌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사회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투쟁하는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대신 지금 누가 인간으로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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