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가 아닌 노동자가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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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가 아닌 노동자가 쉴 수 있도록
  • 편집부
  • 승인 2018.05.11 09:27
  • 수정 2018-05-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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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김수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국회는 2월 28일 본회의를 통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은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다.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제한하였고, 특히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왔던 특례업종의 범위를 축소했다. 기존 근로기준법 상 특례업종은 형식적인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만으로 노동시간 제한 자체를 두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다. 이번 법 개정으로 마침내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업종 중 하나가 사회복지사업이다.
 사회복지사업 직종 중엔 활동보조사들이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여 자립생활을 돕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국가가 만들어낸 일자리다. 이들의 임금은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하는 수가에 따라 책정되지만 복지부의 수가로는 활동보조사들의 주휴수당과 연장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 정부의 예산 자체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활동보조사들이 처한 노동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초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던 특례업종 지정이 해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발맞춰 복지부는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기관들에게 노동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준수를 강조하였다. 활동보조사들의 노동시간은 단말기의 가동시간에 따라 책정되는데 장애인과 활동보조사가 만나 활동지원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단말기를 켜고 서비스를 종료할 때 단말기를 끄는 방식이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시간은 단말기가 꺼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반대로 돌아간다. 
 복지부의 공문을 받은 활동지원기관들은 자신들의 근로자인 활동보조사들에게 8시간 이상 근로를 하는 경우 8시간 후 한 시간은 단말기를 껐다가 다시 켜라고 안내했다. 실제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연속적인 근로가 불가피하다. 일상생활의 지원이나 위급상황의 대처가 8시간 만에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말기를 껐다 하여 장애인의 활동지원 필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위해, 즉 8시간 근로와 1시간 휴게를 지키기 위해서는 교대제와 같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필요조건이겠지만 한 명의 활동지원사가 지속적으로 근로 제공해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은 채, 단말기만 껐다 켰다 하는 방식으로 근로기준법의 형식적 준수가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쉬지 못하는데 단말기만 쉬는 이상한 현실. 활동보조사들의 고통은 근로기준법 개정이 현실에서 뒤틀리는 장면을 고발하고 있다. 
 노동인권의 최저 기준을 규정하는 근로기준법은 활동보조사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위반은 중단되어야 하며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도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복지부와 노동부가 함께 최저임금 준수방안과 일자리 창출 및 교대제 도입과 같은 근본적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개선방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기재부가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복지부는 노동부에게, 노동부는 기재부에게 책임을 미루는 일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지 말고 관계부처가 책임 있는 소통과 발 빠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활동보조사들의 노동인권 보장이 장애인의 자립적이고 인간다운 삶과 선순환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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