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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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의 자격
  • 편집부
  • 승인 2018.02.23 10:08
  • 수정 2018-02-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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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현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2018년 1월 개헌안 초안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에서 실제로 개헌안이 발의될지는 다소 불투명하지만, 국회에서 발의되든, 정부안으로 제출되든 보고서가 초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개헌논의는 주로 통치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기본권 규정에 대한 개정도 논의되어 왔다. 개헌특위 자문위 초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상당수의 규정에서 기본권의 주체가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취지는 세계화가 진전된 현실에서 이주민의 인권문제를 입법정책이나 국제법, 조약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기본권 적용대상의 범위를 공동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장하는 것이 국제적 위상에도 걸맞다는 것이다. 
 기본권이란 인권의 실정법적 표현이라고 할 때, 그 주체가 ‘사람’이 되어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 특위의 개헌안은 일부 기본권에 대해 그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함으로써 외국인의 주체성을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개헌안에 따르면 외국인은 거주·이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업의 자유, 재산권, 선거권, 공무담임권,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국회의원소환권, 공공부조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범죄피해자구조·보호청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급부청구권, 건강권, 쾌적한 주거생활권, 자녀교육의무,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내용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제한하는 현행 헌법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기본권의 보장에 관한 각 헌법 규정의 해석상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은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인간의 권리로서 외국인도 주체가 될 수 있고, 평등권도 인간의 권리로서 참정권 등에 대한 성질상의 제한 및 상호주의에 따른 제한이 있을 뿐이다.”(헌법재판소 1994. 12. 29. 선고 93헌마120 결정 등)의 연장선상에서, 외국인도 제한적 범위 내에서나마 직업선택의 자유 중 ‘직장 선택의 자유’의 주체가 된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결정(헌법재판소 2011. 9. 29. 선고 2007헌마1083, 2009헌마230ㆍ352(병합) 결정)보다도 퇴보하는 내용이어서 위에서 제시된 취지대로 외국인의 기본권 확장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특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등과 관련하여 국회특위 자문위의 다수 의견은 그 주체를 “사회권적 기본권이라는 점을 중시하여 ‘국민’으로 하여야” 하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법률을 통해 확대하면 된다는 견해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문위 초안이 자유권적 기본권의 대표적 권리 중 하나인 집회ㆍ결사의 자유의 외국인 기본권 주체성도 부정하는 점은 제쳐두고서라도, 아동, 노인, 장애인의 권리 조항에서는 내외국인 구분을 두고 있지 않는 바, 아동, 노인,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사회권적 기본권 영역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견해가 심도 있는 고민에 근거하지 않고, 자유권적 기본권은 인간에 본질적인 기본권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회권적 기본권과 구분된다는 선험적 전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권적 기본권은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덜 필수적이거나 본질적이지 않다. 근로의 권리 중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의 외국인 주체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보더라도 사회권적 기본권과 자유권적 기본권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차별이나 제한의 타당성에 대한 심사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왔다고 보기 어렵다(위의 헌법재판소 2011. 9. 29. 선고 2007헌마1083, 2009헌마230ㆍ352(병합) 결정 등). 그런데 기본권 주체성이 부정된다는 것은 권리에 제한을 가하더라도 그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정당화할 필요조차 없음을 의미한다. 
 외국인의 사회적 기본권 주체성이 원칙적으로 부정되는 결과 영주권자가 대대로 국내에서 세금 내며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인 자식은 등교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 국적 아이를 키우거나 배우자의 한국 국적 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이 없으며, 한국 국적이 없는 아동은 고아가 되더라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지만 그러한 제한과 차별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구할 자격조차 없다.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의 문제는 모든 기본권을 국민과 똑같이 보장하여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외국인이 기본권 즉 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인권의 주체는 맞지만 한국 정부가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외국인은 기본권 주체성이 없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외국인에 대해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본권은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임을 전제로 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대표성이 없는 점이 외국인이 가지는 근본적 취약성의 원인이 되어 인권적 차원의 보호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점은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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