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문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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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문명의 시대
  • 편집부
  • 승인 2018.02.12 10:18
  • 수정 2018-02-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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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현/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장
▲ 남용현/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장
 전 세계 92개국이 참여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계올림픽의 뜨거운 열기가 3월 9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장애인동계올림픽(패럴림픽)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스포츠는, 남녀노소는 물론 국적이나 신분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불편함 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장애인체육이 국민체육의 한 영역으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장애인체육에 대한 인식 부족, 장애인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과 프로그램 및 전문가의 부족 등으로 인해 갈 길이 여전히 멀다. 스포츠와 관련하여 오래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필자는 1981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 대학 입학을 위해 예비고사라는 시험을 쳐야 했다. 예비고사는 340점이 만점이었는데, 이 점수에는 이미 오래 전 사라졌지만 일종의 체력 검정과정이라 할 수 있는 체력장 점수 20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억을 돌아보면 체력장의 주요 종목은 100m 달리기, 멀리뛰기, 던지기, 턱걸이 등이었다. 체력장에 응시하지 않을 경우 15점을 받았는데, 그나마 1979년까지는 10점만을 받을 수 있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당시 장애학생을 고려한 체력장 제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체력장 응시를 앞두고 어머니와 작은 갈등이 있었다.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던 필자는 어린(?) 마음에 체력장 점수 몇 점을 더 얻기 위해 절뚝거리며 달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다. 차라리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체력장에서 손해 본 점수를 내 힘으로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달리기 종목에서 점수를 받는 일은 어렵지만, 장애가 없는 학생들보다 양팔의 힘이 좋아 턱걸이 등의 종목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 체력장에 참여해 체력장 기본점수보다 단 몇 점이라도 더 따기를 바라셨다. 특히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해 단 1점이 아쉬운 상황이니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자존심 내려놓고 체력장에 응시하기를 내심 바라셨다. 하지만 못된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체력장 제도는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야만(野蠻) 그 자체였다. 공정한 경쟁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치열한 입시에서 장애 때문에 달리기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출발선에서부터 어처구니없는 불합리한 차별이 행해졌던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체력장 종목을 개발하거나 당구에서 개인의 실력 차이만큼 점수를 달리 부여하는 방식처럼 또는 골프에서 핸디를 부여하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간의 차이를 반영하는 체력장 제도를 운영했어야 했다. 그래야 야만이 아닌 문명의 사회이다.
 지금 우리는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존과 연대가 무시되는 야만의 시대이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매일 버스를 타고 두 세 시간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어 물 마시는 것조차 조심하고 참아야 하며, 지난달 늦게나마 관련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요원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고속버스 이용,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와 학대, 평생 시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격리된 삶…. 문명의 시대에서 보이는 야만의 모습이다.
 간절히 소망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장애라는 특성이 단지 다름으로 인정되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문명의 시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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