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에 계절의 변화가 없는 이유
상태바
나의 글에 계절의 변화가 없는 이유
  • 편집부
  • 승인 2018.01.29 15:34
  • 수정 2018-01-29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승준/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나의 글을 애독해 주시는 어떤 분께서 아쉬운 마음에 어렵게 드리는 말씀이라며 한 마디 조언을 건네주셨다.
 "선생님 글은 너무 좋은데 풍경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족해요. 나무가 우거지고 단풍이 들어도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도 선생님의 글 속 세상에서는 색채나 명암 혹은 주변의 모양이 변하는 것들을 느낄 수가 없어요."
 좀 더 입체적이고 화려한 색 묘사까지 더해져서 보이는 듯한 글을 바라시던 그분의 조언은 시각이 불편하셔서 그런 것 같으니 도움을 드려도 된다면 세상 변하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고 싶다는 것으로 종결됐다.
 그리 두껍지 않은 귀를 가진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런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글들을 되짚어 읽어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밋밋하다는 지적 받은 나의 칼럼들을 아무리 다시 읽어도 누군가의 멋진 글들처럼 세상의 생김새들이 변하는 모양들을 그럴듯하게 덧입힐 자신이 들지 않았다.
 다른 이의 표현을 빌리거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온전한 내 글도 내 감정도 나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생각하다보니 내 글들에서 아름다운 시각적 묘사들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꿈속에서 자연스레 모양과 빛을 잃어가던 풍경들처럼 내 기억과 감정들을 녹여낸 내 글 속의 장면들도 시각적 공감의 의지는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내가 보는 방식으로 느끼고 내가 본 세상을 다시 나와 다르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내 방식으로 표현한다.
 내 글은 그래서 조금 많이 밋밋하지만 의미 있는 다른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 
 요즘 새로 입사한 후배 선생님들은 나의 패션이 맘에 들지 않는지 이런저런 코디를 제안한다. 머리스타일부터 양말과 운동화까지 자세하고 친절한 설득에 난 또 지갑을 열고 그들의 제안에 호응의 의사를 표현해 주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닐 것 같은 트랜디 한 패션 따라잡기도 얼마가지 않아 내겐 버거움으로 다가왔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도 특별히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던 나에겐 뭔가 오래는 함께 할 수 없는 빌려 입은 옷 같은 느낌이었다. 내겐 이미 나의 생활에 맞춰진 내 스타일이 있었고 그건 그냥 내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살다보면 이따금씩 놓치는 것에 대한 지적을 받는데 그 때마다 난 반사적으로 긴장했고 뭔가 잡히지 않는 것들을 따라잡으려고 길지 않은 발버둥을 쳐대곤 했던 것 같다.
 오래전 유학준비를 하던 친구들을 보면서 갑자기 영어책을 사 들고 문법과 회화공부를 하기도 했고 한 때는 교양 있어 보이는 어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무작정 듣기도 하고 팝송가사를 꾸역꾸역 외우기도 했다.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 주문방법이나 비싼 맥주와 와인의 풍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저리 마셔보고 논하려고 했던 것도 관심과 학습의 욕구라기보다는 놓치고 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의 작용이 먼저였던 것 같다.
 사실 요즘에도 뭔가 잘 하는 친구들이나 잘 나가는 선후배들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유 없는 조급함이 들기도 하고 흉내의지가 발동하기도 한다.
 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들도 너무 많다. 그렇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논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놓치고 가야 하는 것들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잘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누구라도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공평하게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경쟁과 도전이 숙명처럼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의지적인 게으름뱅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각자의 분야에서 충분히 열심히 노력하고 달리고 있다. 하나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놓치는 것들만 생각하면 하루 온종일 눈 뜰 고민만 하는 시각장애인처럼 의미 없는 조급함 속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오늘 나의 글 또한 역시나 선명한 시각적 묘사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렇지만 난 그것들을 놓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패션은 조금 조언이 필요한 상태이긴 하지만 내 가치관과 지갑의 근본이 흔들릴 정도로 다른 이들을 맹신하고 쫓지는 않을 것이다.
 난 이미 나의 정체성과 매력들을 만들고 가꾸어 가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나름의 결과물들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력히 확신한다.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당신에겐 큰 쓸모나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그럴듯한 물건들처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