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공감의 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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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공감의 은사이다
  • 편집부
  • 승인 2017.11.10 09:34
  • 수정 2017-11-10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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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한빛맹학교 수학교사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시력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가 되기도 하고 과거를 비춰주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특별한 의지로 공감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나에게 신뢰와 응원을 보내고 나 또한 입장 바꾸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그때 그 시간 그 녀석들의 고민과 상처를 느낄 수 있다.
두 눈 건강한 선생님들은 약간 혹은 매우 억울하시기도 하고 허탈하시기도 하겠지만 그분들이 들여야 하는 에너지와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들 없이도 우리는 서로를 당기는 힘을 느낀다.
직설적인 충고도 장애를 소재로 한 농담도 서로의 진심을 알기에 특별한 부작용 없이 소화하고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약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한 믿음과 공감을 끌어낸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심한 주사를 부리던 후배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이해해주던 선배는 비슷한 실수로 난처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쓰라린 헤어짐을 겪어본 사람의 한 마디는 이론만으로 무장된 이의 어설픈 연애조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실함을 동반한다.
첫월급 40여만원으로 시작했던 나의 보조교사 경험은 학교 안의 소리 없는 수고로움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선물해 주었고 사경을 허우적거리던 병원의 기억들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잘못 이야기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강하게 무장된 뿌리 깊은 당사자주의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경험은 그 어떤 배움이나 학습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이해로 다가온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나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무슨 경험을 했느냐와 관계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나의 인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한계 안에서 그것은 감히 아직은 이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결핍과 아픔과 고통들은 그 때 마다 나의 이해와 공감능력을 높여주는 또 하나의 아이템으로 장착되어 왔던 것 같다.
세상 어떤 능력보다 관계에 대한 소중함과 중요성을 귀히 여기는 나에게 부족함은 어쩌면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아프거나 의지를 가지고 결핍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내게 다가오는 실패와 부족함이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품는 가슴의 확장임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는 유난히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의 시간을 함께 걸어 온 한민족이다.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있다.
서로가 가진 약함의 기억들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내 학생들이 그러했듯 특별한 의지나 노력 없이도 서로의 부족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결핍은 은사이고 아픔은 선물이고 슬픈 기억은 누군가에게 큰 위로의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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