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그리고 같이 있는 이야기
상태바
가치 그리고 같이 있는 이야기
  • 편집부
  • 승인 2017.09.21 09:46
  • 수정 2017-09-21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증장애인이 주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니시노미야시 방문기
▲ 전지혜/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필자는 최근에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일본의 한 도시에 다녀왔다.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도시였기에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오사카와 고베의 중간쯤에 위치한 니시노미야시는 경제적으로 일본 상위그룹에 속하는 48만 인구의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주민으로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고 있다. 방문해 본 결과 장애인 권익옹호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지역주민과 중증장애인이 섞여서 살아갈 수 있는 복지시스템을 갖춘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면 장애인의 낮 시간의 활동을 보더라도, 한국의 재가 장애인들은 보호작업장에 가거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한다. 또한 최중증 와상장애인으로 호흡기를 사용하거나 튜브식사를 할 정도라면 거주시설에 있거나 병원에서 대부분 의료적 처치만을 받고 하루를 보낸다. 활동지원인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돌봄의 대상이 될 뿐, 실질적인 사회적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니시노미야시는 달랐다. 낮 동안에 활동할 수 있는 지역 내 장소가 꽤 여러 곳이었다. 커피숍, 서점, 잡화점, 식당 그 어느 곳이든 이용할 수 있다. 당연한 지역사회에서의 생활보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중증장애인이 소비자로서 이러한 곳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 장소에서 그들이 일을 하는 직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아르코라는 상점에서는 목에 튜브식 식사 줄을 끼고 있을 정도의 장애인도 잡화점에서 비장애인 서포터(활동지원 개념)와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다. 계산대 옆에 누워서 있는 장애인도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고, 그 앞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서포터의 지원을 통해서만 활동할 수 있지만, 아주 천천히 거스름돈을 건네던 최중증 뇌병변장애인도 근로 중이라고 했다. 최중증장애인이 장사를 하면서 지역에 섞일 수 있도록 장애인의 주간활동을 복지 시스템 내에서 마련해 둔 것이다. 지역의 식당도 커피숍도 주간보호센터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일터이자 지역주민과 섞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방문했던 한 식당은 유리로 내부가 보이도록 해둔 공간이 있었는데, 한국의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곳이었다. 식당의 절반 공간을 주간보호센터로 만든 것이다. 조리실도 열린 공간이라서 모든 방문객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가격대비 고품질의 식사가 제공되는 곳으로 며칠 전부터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식사를 하는 주민들로 테이블은 꽉 차 있었고, 주간보호센터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식당에 나와서 서포터와 함께 서빙도 하고, 안에 들어가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과 휴식을 하고 있었다. 식사하는 주민들은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기에 유리를 통해서 센터 내 모습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그냥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뿌리파”라는 커피숍도 지역에 섞여 있는 주간보호센터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위층에는 자립생활체험홈이 있었고, 주간보호센터와 보호작업장과 같은 공간도 있었으나 맨 아래층에는 최근에 인테리어를 한 커피숍이 있었다. 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 중증장애인들은 한 시간씩 교대로 내려와서 서빙도 하고 주민과도 만나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서빙 복장을 하고 메뉴판을 건네는 모습은 참 낯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광경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지역사회 참여활동을 장애인 개인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는 상점에 가고, 또 하루는 커피숍에 가고 하는 등 여러 세팅에서의 생활을 개인별로 계획하여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호작업장에 다니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계속 보호작업장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다양한 장소에 갈 수 있으며 근로자로서 참여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중증장애인 참여와 통합을 위한 노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산지원방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장애인이 활동하고 이용하는 기관에 예산이 주어지는 방식이기에 장애인에 대한 서포터들의 지원방식은 질적으로 좋아진다. 또한 거의 일대일 지원이 가능한 정도의 예산지원 규모에도 주목할 만하다. 장애인 1인당 약 1시간에 4천엔의 예산이 지원되는데 약 2천엔 정도가 실질 서포터의 세전 인건비라고 하였고 나머지는 지역사회 내에서 주민으로 어울려 지낼 수 있는 형태의 주간활동기관을 세팅하고 운영하는 비용으로 쓰인다고 했다. 
 한국의 최중증장애인이 지역에서 낮 시간을 지내고 있는 주간보호센터는 지역사회와 분리된 형태가 다수이며 지역사회 참여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력부족 및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서 장애인은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 내에서 고립되고 분절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 가족들은 중증장애인이 낮에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한다. 언제쯤 한국의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에서 이렇게 자립하고 섞여서 살아갈 수 있을 지 궁금하다. 거주시설의 소형화 바람이 불고 있고 그룹홈이 늘어나고,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최중증장애인의 자립은 거의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니시노미야시의 장애인들의 낮 활동과 자립을 지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도 활동지원인만 제공하는 형태의 지역사회서비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지역사회 세팅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주간보호센터의 변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기존 지역사회 내 민간 사업장의 변화 유도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밀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연금액 인상이나 활동지원 제공시간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역사회 기반을 조성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과 같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치 있는 노력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