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10주년 맞은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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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10주년 맞은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방향>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7.07.21 09:49
  • 수정 2017-07-2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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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3월 6일 출석 국회의원 197명 중 196명이 찬성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4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1일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차별구제요건 완화하고 시대변화 반영해야

장애인 욕구-인권의식 못 따라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원장이었던 (사)장애인법연구회,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인권단체들의 욕구와 인권의식은 지속적으로 높아진 반면 실제 법령의 내용이나 그에 대한 해석 및 적용,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법무부의 시정명령, 법원의 구제조치 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목적을 규정한 제1조에서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규정하고 있는데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문언상 금지하는 장애차별이 직접차별에 한정돼 있으므로 모든 차별이 포함되도록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로 개정이 필요하다.

제2조 장애의 정의와 관련해 현행법에선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장애를 손상 중심적이고 의료적인 모델로 다루는 것으로 장애인의 사회생활에서의 제약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의 개념을 진화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장애인과 사회적 환경, 비장애인들의 태도가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장애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장애’를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동등한 기초 위에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저해하는 신체적 기능, 정신적 능력, 심적 건강에 있어 제한을 초래하는 상태로, ‘제한’이란 일상적 생활과 평등한 사회참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6개월 이상 영향을 줄 경우로 정의하고 ‘장애인’을 제1항에 따라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각론에서 제2장 ‘차별금지’, 제3절 ‘재화와 용역의 제공’ 영역의 경우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원의 경우 재화·용역 등의 제공 영역에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것으로 적극 해석하고 있지만 금지되는 차별의 유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장애인법(ADA)의 경우 우리나라 재화와 용역 영역에 해당하는 ‘공중시설’의 범위를 12개 범주로 열거하고 있고 영국도 ‘서비스 제공자’에 대해 8개 범주를 예시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개정방향으로 “‘재화와 용역 등의 제공’이라 함은 공중에게 유상 또는 무상으로 물자나 장소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에는 토지 및 건물의 매매·임대,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 이동 및 교통수단의 제공, 문화·예술활동 관련 서비스의 제공, 체육활동에 관한 서비스의 제공, 상품의 도·소매, 숙박·오락·요식 서비스 제공 등 추가로 3~4개 영역을 명시토록 하고 추후 확장 가능성을 남겨둘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의 경우 시설물의 대상과 적용범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으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지난 2009년 4월 이후 신축, 증축, 개축하는 시설로 명시해 면적과 건축년도를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일률적으로 면제하는 예외규정을 운영 중인데 면적과 건축년도의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공중이용시설로 장애인의 시설물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신·개축되는 건물에 대해서는 ADA 가이드라인 준수가 요구되며 1990년 법 제정 이전 건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용이나 곤란 없이 용이하게 달성 가능한 방식의 물리적 장벽 제거’를 요구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장애인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지난 2009년 4월 이전 시설물이라도 정당한 편의제공 설치기준 이행이 가능한 경우 준수토록 하고 편의시설 설치가 곤란 시엔 대안적 조치를 강구할 의무를 부과토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4절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관련해선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한 제26조 제3항에서 공공기관의 직무수행 및 권한행사에 관한 차별금지를 규정하면서 그 대상을 허가, 신고, 인가 등 절차와 공공사업 수혜자의 선정기준을 정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를 행정절차법상 행정절차 및 국가계약법에 따른 계약절차 전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제6항에서 장애여부 확인 및 조력에 대한 고지를 사법기관에만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강제퇴거, 보호를 명목으로 한 수용 등 행정절차상 강제처분에서도 필요사항이므로 공공기관까지 의무가 확대돼야 한다.

또한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같이 국가재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관련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선 재난상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실제로 메르스 사태 때 혼자 사는 중증장애인에게 자택격리 조치가 내려져 그 장애인은 결국 메르스에 감염돼 메르스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며 국가재난 상황에서 공공기관 등의 장애인차별금지에 대한 규정 신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업무 총괄할
국가-지자체 ‘장애인차별 담당관’ 필요

제4장 ‘장애인차별시정기구 및 권리구제 등’에선 법무부장관의 시정명령을 규정한 제43조의 경우 시정명령 요건이 너무 엄격해 법무부에서도 이를 활용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적절한 시정명령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시정명령의 요건 중 ‘그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 및 지자체는 동법 제8조에 따라 장애인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차별 시정에 대해 적극적 조치 및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담당할 기관이 없어 실효적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 및 지자체 산하에 ‘장애인차별 담당관’을 둬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단체소송제도 도입 필요

제5장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에선 ‘단체소송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차별피해를 당한 장애인이 개별적으로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 구제를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장애인 권익증진을 위한 단체가 대신해서 법원에 개별 피해를 당한 장애인의 권리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장애인차별 구제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 관할이 행정법원인지 민사법원인지가 불분명하므로 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제6장 ‘벌칙’에선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이라도 현행법에선 ‘차별의 고의성, 지속성 및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차별피해의 내용 및 규모를 전부 고려해’ 처별 여부를 판단토록 하고 있어 지나치게 엄격하다.

따라서 장애인차별에 대한 악의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전부 고려’ 규정의 삭제가 요구된다.

박 변호사는 “대륙법 체계인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간단한 개념 중심으로 법조문이 제정돼 해석상의 논란을 남기며 정부 주도의 시행령으로 인해 법의 정신이 훼손되거나 후퇴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법 현실을 반영한 수요자 중심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컨대 상세한 사항을 너무 쉽게 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을 벗어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 필요한 사항의 경우는 아예 모두 법률에 직접 규정함으로써 해석상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 관련 정부부처가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에 빠질 우려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제정 위한 투쟁과정 및 차별사례

이어진 토론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장애인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됐고 영국 연수를 다녀온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내용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됐다.”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과정을 회상했다.

그리고 2003년 4월 15일 장애유형과 활동의 범위, 단체의 규모, 정치적 입장 등의 차이를 모두 배재하고 오로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목표 하나로 장애인단체 58개가 참여한 가운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출범했으며 이후 법 제정을 위한 157일간의 노숙농성을 전개했다. 출범 당시 58개 단체에 불과했던 것이 2007년 3월엔 전국 297개 단체로 확대되었다.

김 국장은 “이렇듯 2001년 초기 논의를 시작하고 법제정추진연대를 구성하면서 시작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투쟁은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으며 그 결과 2007년 3월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길연 소장은 최근 자신이 당한 장애인차별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역에서 오후 2시 회의가 있어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했다. 그런데 서울역에 도착해서 보니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오는 동안 단 한 마디의 안내 방송도 없었고 서울역에서도 아무리 기다려도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역무실에 문의 결과 그때서야 공사 중이라는 답을 받았다.

박 소장은 이렇게 혼잡한 시간대에 공사계획을 세우고 장애인의 이동을 가로막은 처사에 대해 항의했고 역직원은 전화를 통해 “전동휠체어를 탔습니까? 수동휠체어를 탔습니까? 전동휠체어를 탔으면 저희가 수동으로 바꿔 태워서 들어 옮기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박 소장은 자신의 장애상태로 인해 수동휠체어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전달했지만 부역장은 “여기 관리책임자인 내 지시를 따르든지 그러지 않을 거면 집으로 돌아가라. 나는 여기 부역장이니 민원 넣고 싶으면 넣어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역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명백한 장애인차별이라고 느낀 박 소장은 바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들에게 연락을 했고 이들이 찾아와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함께 문제제기를 하자 서울역 측은 그때서야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박 소장은 사과내용을 문서화할 것을 요구했고 부역장은 “문서로 된 사과는 할 수 없다.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라”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긴 시간 실랑이 끝에서야 문서로 된 사과를 받아냈다고 전했다.

박 소장은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역장이 나타나 엘리베이터를 가동시켜 우리가 올라갈 수 있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을 통해 철도 등 공공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인식교육이 강화돼야” 함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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