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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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동행’
  • 오유정 기자
  • 승인 2017.04.24 09:40
  • 수정 2017-04-24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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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는 인천혜광학교 가족들과 유정복 인천시장을 비롯해 독일·러시아·스웨덴·이스라엘·인도네시아·케냐·파라과이·미국 등 각국 대사와 관객들이 3천여 객석을 빽빽하게 메웠다. 박기화 상임지휘자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가 준비한 특별한 공연 ‘동행’을 만나기 위해서다. 시각장애를 이겨낸 이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 속에 객석과 무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된 감동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서 일곱 번째 정기공연

각국 대사와 관객들로 3천여 객석 꽉 채워…감동의 선율 선보여

“옆에 앉은 사람의 손을 잡아 주세요.” 재능기부로 연주회에 참여한 국악인 오정해가 객석에 요청하자 관객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허공에 흔들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단원의 안정적인 연주와 오정해의 힘 있는 목소리가 함께한 ‘홀로 아리랑’ 협연 동안 관객들은 잡은 손을 흔들며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라는 ‘홀로 아리랑’의 가사처럼 객석과 무대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인천혜광학교(교장 명선목)의 시각장애 단원들로 구성된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가 4월 20일 제37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일곱 번째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박기화 상임 지휘자의 지휘 아래 혜광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시각장애 교사 등 음악을 사랑하는 60여 명의 시각장애 단원들이 참여한 이번 공연은 ‘동행’이라는 주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여 조화롭게 더불어 사는 사회가 구현되기를 염원하는 단원들의 마음을 담았다.

이날 공연에는 유정복 인천시장을 비롯해 독일·러시아·스웨덴·이스라엘·인도네시아 등 각국 대사들도 참석해 감동의 순간을 함께 했다. 또한, 인천혜광학교만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노하우를 접하기 위해 홍콩과 일본 등지에서 온 특수교육 관계자와 음악교사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번 연주회는 단원들에게 조금 긴장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미 크고 작은 무대에 여러 차례 선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지만 지역을 벗어나 큰 무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곡 카르멘 서곡으로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촘촘하고 섬세한 연주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이어 혜광앙상블, 타악앙상블, 백파이프 솔로, 그리고 재능기부로 참여한 국악인 오정해의 무대가 이어졌다.

곡으로는 놀라운 은총(Amaizing Grace), 위풍당당행진곡, 카르멘 서곡, 성가 '살아계신 주'부터 가요 '거위의 꿈'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

햇수로 7년차 베테랑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2008년 시각장애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관악부 창설을 시작으로 2011년 창단연주회를 했다.

그동안 6차례의 정기공연과 크고 작은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고, 지난 1월에는 재학생·동문·시각장애교사·타지역 시각장애인 등으로 단원을 확장해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은 악보를 볼 수 없어 전부 외워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작년 12월까지 6회에 걸친 정기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유치원에서 초, 중, 고등학생은 물론 전문과정인 전공과와 중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재활과정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혜광학교는 희망자라면 누구나 악기를 배워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기회를 제공하여 음악을 통한 인성 함양과 중도실명 학생들의 심리, 사회적 재활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악보 통째로 외우는 열정

생업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연습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공연에는 보면대가 없다. 시각장애를 가진 단원들의 특성상 악보를 볼 수 없어 통째로 외우기 때문이다. 대신 귀에 꽂은 리시버로 지휘자의 지휘를 들으며 다른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다.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혜광학교 광명원 3층 강당에서는 바이올린, 오보에 등 여러 악기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강당 안을 들여다보면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의 악기를 어깨에 이거나 두 손으로 잡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합주 삼매경에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인천혜광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시각장애교사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로만 구성돼 있다. 단원들은 악보와 지휘자를 볼 수 없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거나 특수 제작된 이어폰을 통해 음성 설명을 들으며 연주해야 한다. 한 곡을 외워 연주하는 것도 힘들지만, 함께 연주하며 맞추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원들은 힘든 내색 없이 서로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데 여념이 없다. 절도 있는 활시위와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연주는 이들의 적지 않은 연습량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여러 곡을 또, 단원들과 맞춰 연주한다는 점에서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어마어마한 연습량은 빛을 발한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틈틈이 홀로 또 함께 연습한다.

이번 연주회에 올라온 ‘거위의 꿈’을 연주한 김월랑 오보에 단원은 현재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하는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마다 꾸준히 합주에 참석했다. 또한, 김명선 플루트 단원을 비롯한 인천혜광학교 재학생들도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매번 음악실과 강당에 나와 합주에 참석했다.

<미니인터뷰>

 
“백파이프는 저에게 특별한 악기예요”

전병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 백파이프 연주자

정기연주회를 위한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지난 4월 18일, 인천혜광학교 강당에서 만난 전병준 단원은 자신의 몸만 한 백파이프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손을 대며 조율에 집중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시종일관 웃는 얼굴은 영락없이 까불기 좋아하는 중학생의 모습이지만, 백파이프에 관한 질문을 건네자 사뭇 진지해졌다.

“저희 학교 강은주 선생님이 저에게 백파이프를 연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어요. 그날 바로 인터넷에 백파이프를 검색해봤죠. 일단 소리가 크고 좋아요. 또, 독특하면서 연주가 쉬워요. 소리와 크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어 매력 있고요. 그래서 시작한 것 같아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지난해 기존에 연주했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의 새로운 솔로 연주를 위해 백파이프 파트를 신설했다. 스코틀랜드 민속악기인 백파이프는 동물 가죽으로 된 자루에 4개의 리드를 가진 관이 끼워진 관악기다. 우렁찬 소리로 행진이 필요한 행사에 주로 사용되는 백파이프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도 자주 사용된다.

또한, 숨을 들이마시면 소리가 끊기는 일반 관악기와는 다르게 자루에 주입된 공기로 연주하는 백파이프는 소리의 끊김 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손으로 운지하며 쉴 새 없이 공기를 주입해야 해 호흡을 위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작년 8월에 시작해서 6개월 정도 연습했어요. 처음에 배울 때, 호흡을 많이 소모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또, 소리가 너무 커서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백파이프 연주자인 이용기 선생님과 작년 12월까지 함께 연습했어요. 그 이후에는 혼자 연습했는데요, 주중에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두 시간씩 연습하고 학교 방과후와 한 달에 두 번 있는 토요오케스트라 시간에 연습했어요. 요즘에는 오전에 3시간, 오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합주하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한국백파이프협회 회장인 이용기 백파이프 연주자의 지도 아래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동안 맹연습을 한 결과 전병준 단원은 크고 작은 무대에서 웬만한 솔로곡은 거뜬히 해낼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또한, 그는 국내 백파이프 연주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단원이기도 하다.

“백파이프는 부는 파이프와 챔터, 리코더처럼 운지할 수 있는 구멍이 많이 난 리드가 있어요. 백이라고 하는 주머니에 바람을 넣어서 꽉 차면 챔터에 달린 리드를 운지해 연주해요.

보세요. 백에 바람을 넣으니 드럼파이프에 달린 리드에서 계속 소리가 나죠. 그래서 긴 음도 가능해요. 소리가 확실히 튀죠? 어떤 선생님은 백파이프를 보고 저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 같대요.”

전병준 단원은 백파이프에 대해 애정이 어린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 스코틀랜드의 용사들과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작년에 부평아트센터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긴장보단 기대가 앞서요. 부평아트센터보다 몇 배는 크고 수준급 연주자들만 설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주하게 돼 기쁘기도 하고요.”

이어 전병준 단원은 “예전에는 피아노를 배웠어요. 사물놀이도 해서 장구하고 북도 조금 연주할 줄 알아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요. 곧 마림바를 시작할 거예요. 실로폰처럼 생겼는데 나무로 된 것 있거든요. 백파이프처럼 마림바도 재밌을 거 같아요.”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전병준 단원이 자신의 핸드폰을 뒤져 지난해 부평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공연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빨간 타탄체크 무늬의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인 킬트(Kilt)를 갖춰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모습이 제법 전문가 같다.

“백파이프를 그저 시끄러운 악기로만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저는 백파이프가 우리나라 태평소와 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민속악기인 태평소를 대하듯 백파이프도 사람들이 특별하게 대했으면 좋겠어요. 백파이프는 저에게 특별한 악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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