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성폭력, 언론보도 문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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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성폭력, 언론보도 문제점은?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6.11.18 10:26
  • 수정 2016-11-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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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와 성폭력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최근 여성 혐오적 문장을 담은 언론 보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두드러지고 있는 지금, ‘공감’은 장애인에 대한 왜곡과 편견 등을 강화하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 시민감시단과 함께 최근 5년 동안의 장애인 성폭력 사건 관련 보도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 했다. 장애 성폭력 관련 보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살펴본다.
 
성폭력보도, 자극적인 제목-세세한 내용 기사화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가 장애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도해야
 
언론모니터링, 왜 필요한가?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민들레’에 따르면, 2011년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촉발된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2012년 성폭력과 관련된 법이나 제도들이 생기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가 실제로 2005년도까지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수많은 시민단체와 반성폭력운동단체들의 관련법 개정 및 제도 마련에 대한 꾸준한 요구와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가 국회와 정부에 압력이 되었고, 결국 2012년 관련법의 개정과 각종 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이 처음에는 온갖 자극적인 제목으로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장애여성’을 성폭행한 ‘파렴치하고 짐승 같은 가해자’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고, 사건의 세세한 피해 내용을 보도하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의 관계 속에서 피해 장애여성의 장애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장애여성이 처한 가정 및 사회환경, 대인관계 등 삶의 맥락적인 이해를 통해 피해를 입게 된 정황을 살펴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대책 마련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발생하면, 마치 처음 있는 일인 것처럼 분노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기사화되지만, 금세 더욱 더 자극적인 사건에 의해 잊혀 진다. 이는 언론보도가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쉽게 소비되는 가십거리로 취급하는 것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보도를 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차별과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인권의식을 향상시키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언론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 강화
또 다른 2차 피해-혐오-편견 확산시켜
 
‘민들레’에 따르면 모니터링 결과, 먼저 성폭력의 왜곡된 통념을 강화하는 많은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는 왜곡된 통념을 바탕으로 성욕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또는 순간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남성젠더의 언사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사례다. (지적장애 여성 성추행 40대 입건, “단둘이 있으니 갑자기 욕정이…) 이를 통해 성폭력은 참기 힘든 성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통념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장애여성을 피해자 및 잠재적 피해자로 규정하고 삶을 통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제목의 기사들(의붓오빠가 여동생 성매매…지적장애여성 집중관리, 지적장애여성 가구에 CCTV 설치)도 쉽게 발견됐다.
 
이는 여성의 삶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통제하고, 더 나아가 이는 밤늦게 다니거나 관리되지 않은 지적장애여성 등에 의해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왜곡된 통념을 강화시킨다. “재가지적장애인 성폭력 예방은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부터”라는 기사 역시 성폭력을 개인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해, 근본적인 원인을 성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취약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뿐만 아니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제목들도 적지 않았다. “성폭력범 94%가 정신질환 30%는 ‘사이코패스’”라는 제목은 성범죄 대다수가 정신질환자에 의한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하고,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역시 갖게 하는 문제적인 기사다. 이 기사는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를 견고하게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인 통제와 배제를 정당화한다.
 
“‘2만원 줄게’ 20대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 70대 실형”같은 제목은 피해자가 장애로 인해 얼마나 취약했는지 집중하게 하면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무능력하고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경도지적장애나 경계선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지적장애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에 벗어나는 부분들로 이해 수사 재판과정에서 끊임없이 피해 자체를 의심 받기도 한다. 이러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였는지 증명하기를 요구받는다. 실제 지적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인지능력 및 학습, 기술 습득 정도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사회생활을 수행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장애에 대한 정형화된 몇몇 특성이 과장되게 일반화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시선 차이
가해자 변명 ‘생생하게’ 전달
피해자의 언어는 ‘증발’
 
피해자의 상황이나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극단적 표현도 많았다. “장애녀들 성노리개 삼은~”에서는 ‘장애녀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돼 일반적으로 ‘녀’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성노리개’라는 표현도 인간인 피해자를 물건인 노리개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으로서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얹혀살던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한 40대 검거”에서 피해자는 ‘얹혀살던’ 존재로 표현된다. 장애인이 의존적이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게 한다. 이는 사건과 상관이 없는 피해자의 상황이 극단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 장애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한 차별적인 관점이 반영된 결과에 다름없다.
 
가해자 언어를 인용해 가해자의 논리를 확산시키고 범행 수법을 학습하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단둘이 있으나 갑자기 욕정이”, “걔가 꼬셨다” 등과 같이 가해자가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들이 그대로 쓰임으로써 가해자의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는데, 이는 피해자의 언어는 대부분 삭제되는 상황에서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가해자를 비인격화 시키는 경향도 뚜렷했다. “짐승 같은 아버지와 삼형제~, ‘인면수심’ 50대 중형”이라는 표현은 이들의 행위가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이웃이나 평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즉, 성폭력이 일상의 권력관계에서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 같은’ 사람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범죄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성폭력의 일상성을 부정하고, 독자들로 하여감 성폭력의 문제를 자신과 분리해 타자화 하기 쉽도록 한다.
 
가해자들의 행위를 축소하는 표현도 많았다. ‘몹쓸 이웃들’, ‘나쁜 이웃’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표현하는 것이다. 범죄 행위에 대한 정확한 용어 사용을 통해 성폭력은 엄연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 중에서도 사회적 위치가 취약하거나 낮은 경우에는 그 취약함이 가해 행위를 더욱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성폭력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왜곡되기도 한다. “지적장애 여고생 성폭행한 불법체류 네팔인 실형”, “에이즈 감염된 20대 남, 전자발찌차고 장애인 성폭행”이라는 제목에서처럼, 가해자들은 위법 행위를 한 외국인과 에이즈에 감염된 남성으로,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해 혐오를 재생산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경우, 그 범죄를 한 개인이 아닌 속한 집단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취약한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은 ‘더 취약한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단순히 서열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성폭력은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을 일방적으로 하여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따르면, 그 힘의 차이는 다양한 요인이 다층적으로 작동해 결정짓게 된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에이즈 감염자 등 사회적 위치만 강조되면 성폭력의 본질적인 문제인 ‘젠더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선정적, 정형화된 이미지로 편견 자극만
 
기사와 함께 삽입된 삽화나 이미지의 지나친 선정성도 문제였다.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다룬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기사 자체가 성을 상품화한 포르노그래피라고 착각 할 만큼 해당 기사와 무관한 선정적인 이미지나 장면 등을 삽입해 보도하는 것<그림1>이다. 이는 성폭력 사건을 범죄가 아닌 흥밋거리로 소비하고, 성폭력을 성적인 문제로만 보게 해 권력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무척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 mbn 뉴스 (2014년 08월 10일 자)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형화된 모습으로 ‘피해자다움’을 고착화하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집에 갇혀 지내거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묘사하는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피해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피해 자체를 의심하는 통념이 작동하게 된다.
 
가해자에 대해 지나치게 희화화하거나 비인격화함으로써 성폭력 범죄의 일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즉, 성폭력 가해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표현해 마치 성범죄는 ‘짐승이나 괴물 같은’ 특별한 존재가 저지르는 것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희화된 가해자의 모습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 예방이나 근절을 위한 대책을 세움에 있어서 수동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선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마치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왜곡된 통념을 강화하는 것도 문제였다. 기사 내용과는 상관없이 성폭력 상황을 보여주는 것도 문제지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의 여성이 유발했거나 자발적으로 선택한 상황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마치 여성의 신체 노출이 남성의 성욕을 자극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인식을 확립하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성폭력사건 보도가이드라인
인권감수성, 끊임없이 민감토록 해야
 
‘민들레’는 이번 모니터링을 진행한 이유는 새로운 보도 원칙을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미 2011년에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인권보도준칙’과 2012년에 발표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2014년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 여성아동폭력중앙지원단이 제작한 ‘성폭력사건보도수첩’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등 이미 많은 지침과 원칙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침들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론사의 공식적인 보도 교육이 있다면 그 과정 안에서, 없다면 새롭게 개설해서라도 위 가이드라인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와 젠더, 인권에 대한 올바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교육하고 훈련하면서 감수성을 끊임없이 민감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기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덕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 올바른 관점을 가진 언론이 차별 없는 성평등적인 인권사회로 나아가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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