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작업치료’와 ‘강제노동’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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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작업치료’와 ‘강제노동’ 차이
  • 오유정 기자
  • 승인 2016.07.08 09:51
  • 수정 2016-07-08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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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법에는 작업치료에 관해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치료 또는 사회복귀에 도움된다는 판단이 있을 경우 환자에게 공예품 만들기 등 단순 작업을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정신의료기관에서는 치료를 빙자한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다. 강제노동을 막기 위한 규정이 있어도 현실에서는 경계가 모호한 치료와 노동력 착취 사이에서 학대받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있는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대한작업치료사협회는 지난 7월 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인권에 기반을 둔 정신장애인 작업치료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작업치료와 학대의 경계를 정확하게 되짚고 이를 개선할 법적 제도와 방안을 모색했다. 
 
일부 정신의료기관 작업치료 오용 노동강요·착취 등 발생
환자본인 동의-정신과전문의 지시?지도-수입배분 요건 충족돼야
 
정신보건법 46조의 2(입원환자 등에 대한 작업요법)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입원환자의 치료 또는 사회복귀에 도움된다고 판단하면 건강상태와 위험성 등을 고려해 환자에게 공예품 만들기 등의 단순 작업을 시킬 수 있다. 작업은 대상자 본인의 신청, 동의가 있는 때에만 실시해야 하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지시하는 방법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그 내용을 진료기록부 또는 작업치료일지에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정신의료기관 내에선 작업치료를 빙자한 강제노동이 자행된다. 대개는 병원이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청소와 배식 업무를 환자에게 시키는 것이다. 때로 환자들은 용돈 수준의 작은 임금을 받고 병원 이사장 소유의 과수원 등에서 농작물 수확, 비료 주기 등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결정문에 잘 드러나 있다. 병원은 환자들의 자발적 봉사활동이기에 신청이나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인권위는 분명한 ‘인권침해’라고 꼬집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정신장애인 당사자 김순득 씨는 “언젠가 작업치료라는 명목으로 수수깡을 포장하는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정해진 기간 작업해서 생산해낸 상품의 총 개수를 금액으로 환산해 수입으로 나눠 갖는 공동작업이었는데, 당시 한 달 동안 일을 하고 몇 천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실제로 이 일이 치료와 재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씨는 “11년째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지내왔지만, 작업치료라는 이름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른 작업을 했던 곳은 없었다.”며, “삶을 위해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당사자들이지만, 작업치료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어쩌면 불법적일 수도 있는 작업동원에 불과했다.”고 토로했다.  
 
인권위 “전문의 지시-지도 없이 이뤄지는 작업치료는 인권침해” 
 
<사례>
A정신의료기관은 작업치료를 시행하고 있지 않았으나 병원 내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병실과 병동 화장실 청소, 배식 보조 등을 ‘봉사활동’으로 지칭하고 환자에게 시켰다. 그리고 일부 활동에 대해 대가로 간식을 제공했다. 
 
B정신의료기관은 정신과 전문의의 지시 없이 병동마다 2명씩 청소도우미를 지정해 복도와 화장실 청소를 전담시킨 뒤 매월 5만 원씩 지급했다. 
 
C정신의료기관은 이사장의 조카가 운영하는 과수원에 정신장애인 환자를 데리고 가 작업치료 명분으로 사과 따기, 컨테이너 박스 운반하기, 비료주기 등 작업을 시킨 후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1,500원 가량의 시급을 지급했다.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 장영재 변호사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작업치료 오용으로 인한 정신장애인 인권침해 현황을 법원의 판례와 인권위의 결정례, 장애인인권단체 상담사례를 통해 제시했다. 
 
인권위는 위 사례에 대해 대부분 정신장애인의 인권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A정신의료기관의 사례에 대해서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을 누군가 자의로 하는 것은 순수한 자발적 봉사활동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활동이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지시와 작업치료 지침에 따른 치료 프로그램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을 강요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어 C정신의료기관의 사례에 대해서는 “작업치료 환자들이 과수원에서 한 역할과 업무를 보았을 때, 이 사건은 작업치료 목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병원 이사장의 조카가 임차해 운영하는 과수원에 작업치료 명목으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이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신보건법·정신요양시설 설치운영 규칙 개정 필요
 
장 변호사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작업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자인 환자 본인의 신청이나 동의, 정신과 전문의의 지시, 정신과 전문의의 지도를 받은 정신보건전문요원 또는 작업치료사에 의한 실시, 작업에 따른 수입 배분들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정신의료기관들이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고 있어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정신의료기관의 작업치료 오용으로 정신장애인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정신보건법과 정신요양시설 설치운영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먼저 「정신요양시설의 설치기준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해당 시설 자체의 청소·취사·세탁 등 단순 작업을 시킬 수 있다.’는 규칙 제11조는 인권위 기준으로 볼 때 이를 남용할 우려가 있어 기본서비스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작업임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업치료에 대한 동의에 앞서 의사의 설명의무가 준수되도록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설명의무와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의료행위와 관련해 당연히 인정되는 의무와 권리로서 정신의료기관 등도 의료기관에 해당하고, 작업치료는 의료행위로서의 성질도 지녀 의사의 설명의무와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작업치료에도 당연히 인정되기 때문.
 
이어 장 변호사는 “정신보건법 시행규칙과 정신요양시설 설치운영 규칙은 작업으로 얻은 수입을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작업치료 지침은 임금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 “작업치료 지침 상의 급여와 관련된 규정을 복지부령에 부합하도록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장 변호사는 정신과 전문의가 작업치료를 오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하며, 예로 작업치료 지침에 작업치료 계획서와 평가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정신의료기관 등에 대한 심사인증 평가항목에 작업치료에 관한 항목을 포함시키도록 한다.
 
또한, 정신의료기관 등이 제공해야 할 기본 서비스를 작업치료의 활동으로 할 경우, 기본 역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수령하는 임금에 상당하는 작업치료비를 책정하도록 규정에 두는 방법을 제시했다.
 
작업치료 인식, 종사자-이용자 간 온도차 
작업치료 개념 정립·확대 필요
 
이선욱 대구대 작업치료학과 교수에 따르면,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는 넓은 의미에서 생활기능의 회복·유지·개발을 촉진하는 작업을 통해 수행하는 치료와 훈련 등을 의미하며, 좁게는 일과 신체적 활동을 통한 치료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작업치료에 대해 이용자인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직원들이 할 일 또는 직원을 고용해 할 일을 작업치료라는 명목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 ‘강압 또는 위계에 의한 강요에 따라 해야만 하는 프로그램’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이용자와 종사자 사이에도 온도차가 발생한다. 이 교수는 “이용자는 치료보다 단순한 노동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치료로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닌 명령받은 것,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종사자는 성과 중심의 정부 평가와 같은 제도적 문제, 전문성 없는 사람들의 개입, 이용자 의사를 무시하는 보호자의 개입과 주변의 인권침해 가능성 제기 등으로 작업치료 영역이 축소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는 단지 당사자 집단과 작업치료사라는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젠 전문가가 아닌 ‘장애인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권이 보장된 작업치료를 위해 이 교수는 작업치료사의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작업치료학 분야에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의했다. 
 
또한, 작업치료 및 직업재활이 단순한 노동을 위해서 사용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적 치료의 한 방법으로 적용되는 즐거운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작업치료의 효과성,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의료기관 이용자가 스스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체제 마련해야
 
 
이미현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팀장은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일어나는 강제노동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노동착취와 그 사례가 비슷하다. 정신의료기관 또한 장애인거주시설처럼 사회에서 격리돼 있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거주시설 안에서 외부에 문제를 알리기 어렵다. 정신의료기관 이용자가 자신이 하는 작업치료가 치료가 아닌 강제노동임을 알았을 때 문제 상황을 신고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팀장은 작업치료와 장애인 학대의 경계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이 강제노동과 학대에 대해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그간 정신의료기관의 강제입원에 인권센터들이 초점을 맞춰 강제입원 시 퇴원절차, 입원 중 보장되는 권리 등을 설명해왔다. 이제 더 나아가 적법하고 적절한 정신보건시설 이용 시 시설 안에서 보장받아야 하는 환자의 권리에 대해 환자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에 기반한 작업치료 시행돼야
 
이주언 국립부곡병원 작업치료사는 “인권에 기반한 작업치료가 중요하지만 많은 병원에서는 작업치료 자체를 꺼린다.”고 말했다.
 
이 치료사는 “작업치료를 하려면 작업장을 만드는 등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작업치료는 수가가 낮고 인증평가제에서도 작업치료 규정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되어 있다.”며, “정신보건전문요원 등의 입장에서도 작업치료를 시행하게 될 경우 업무 과중이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치료사는 작업치료와 같은 직업재활훈련이 정신장애인에게 수입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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