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법 시행과 자기결정권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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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법 시행과 자기결정권 확보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5.11.23 09:22
  • 수정 2015-11-23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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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발의돼 2014년 5월 20일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이 드디어 11월 21일 시행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법과 제도 내에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토론회’가 구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지난 9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재상 기자>

 

발달장애인법, 의사결정지원 기본원칙-기준 제시

의사결정지원 최후수단으로서 의사결정대행도 본인의 최선이익 관점서 이뤄져야

 

▪ 장애인권리협약과 의사결정지원의 제도화 필요성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인환 교수는 ‘장애인권리협약과 의사결정지원의 제도화 필요성’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11월 21일 시행되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의사결정지원의 원칙과 기준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구체화되지 못한 의사결정능력상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으로서 의사결정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과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정 발달장애인법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재산에 관한 사항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법률적 또는 사실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여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규정했다.(제3조)

특히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주거지의 결정,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나 거부, 타인과의 교류, 복지서비스의 이용 여부와 서비스 종류의 선택 등을 스스로 결정하며 누구든지 발달장애인에게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항과 관련하여 충분한 정보와 의사결정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지 아니하고 그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만약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호자가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호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제8조)

박 교수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요청하고 있는 의사결정지원원칙은 이미 확립된 원칙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보편적 장애인인권규범으로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며 외국의 사례에 대해 소개했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주의 대체합의법(Representation agreement Act)에서는 의사결정능력 장애인도 자신의 대리인과 재산관리뿐 아니라 신상에 관하여 피후견인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의사결정을 지원하거나 대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은 우선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피후견인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피후견인을 대신하여 의사결정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후견법 개정제안(Victoria Law Reform Commission, Guardianship Final Report 24)에서는 의사결정지원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발달장애인 본인이 서면으로 지정하거나 후견법원에 의해 선임된 의사결정지원자(supporter)가 본인을 대신하여 의사결정 관련 정보에 접근 취득하여 본인에게 쉽게 설명하고 그 내용대로 결정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의사결정능력의 장애 때문에 본인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본인의 희망 등을 고려하여 법원이 공동결정자를 선임하는 방안, 종래 후견인과 마찬가지로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자를 지정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위 사례 어느 것이나 의사결정지원을 중심에 두면서도 의사결정의 대행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의사결정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능력 장애의 어느 단계에 있어서는 모든 합리적인 의사결정지원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때에는 의사결정지원의 최후의 수단으로서 의사결정지원자에 의한 대행결정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어, “물론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의사결정대행에 있어서조차 본인의 희망, 의지, 욕구, 가치관, 선호 등 본인의 주관적 요소를 고려한 본인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의사결정의 대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된 우리나라 정부보고서에 대한 심의 후 공표한 감시의견(concluding observation)에 따르면 후견인에게 포괄적 권한을 부여하고 의사결정대행을 중심으로 하는 성년후견유형에 관해 큰 우려를 표시하며 의사결정대행에서 의사결정지원을 중심으로 후견제도를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개정 민법에 따라 2013년 7월부터 시행 중인 성년후견제는 성년후견인 등에게 피성년후견인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대리권을 부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등 피성년후견인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을 뿐 그 범위를 넘는 법률행위는 성년후견인 등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행 성년후견제도상의 특정후견은 발달장애인들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 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사회참여를 촉진하면서 이들을 커다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박 교수는 “한정후견의 동의유보는 후견인의 취소권 행사의 전제(행위능력 제한)가 아니라 공동결정의 방식에 의한 의사결정지원제도로서 한정후견인은 대리권을 부여받지 않는 한 당연히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취소권이 없는 후견인은 본인의 취소권 행사에 관한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을 뿐이라고 재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권리협약상 최소제한의 원칙

따른 조력의사지원제도 도입 필요”

 

▪ 성년후견인제도의 문제점

이어진 토론에서 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정책위원은 “개정 민법상의 성년후견인제도는 젊은 장애인이 피성년후견인이 됐을 경우 그들의 사회참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자립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 제도가 운영되어야 함에도 개정 민법 그 어디에도 이와 같은 규정은 찾을 수 없다.”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그밖에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자에게 위탁하고 그 위탁사무에 관하여 대리권을 수여하는 것’(민법 959조의 14)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1년 민법이 개정되었고 2013년 7월 1일부터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를 대체하는 성년후견인제도가 시행되었다.

대법원 발표에 따르면 2013년 7월 1일 성년후견인제도가 시행된 후 2015년 7월 말까지 전국 가정법원에 접수된 성년후견 신청은 4,800여 건이었으며 이 중 2,686건에 대해 성년후견인이 선임됐다. 성년후견인 선임은 2013년 7~12월 562명에서 2014년 1,646명으로 증가했고 2015년에 478명이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년후견인제도는 노령, 질병, 장애 등의 이유로 정신적으로 제약을 가진 사람들로 치매 노인(약50~60만명), 정신장애인(약11만명), 지적장애인(약17만명), 자폐성장애인(약10만명) 등 100만명에 가까운 노인 및 장애인들이 이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윤 위원은 “그러나 후견인제도는 장애나 고령으로 인한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장애인권리협약의 ‘최소제한의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조력의사지원제도가 도입돼야” 함을 주장했다.

조력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making)은 모든 문제를 장애인의 편에서 사고하고 장애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기본원리를 가지고 있다. 의사결정자는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조력자는 후견인처럼 결정할 문제를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에게 먼저 설명해주고 그의 선호나 선택에 따라야 한다.

장애인이 자신의 선택을 조력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더라도 조력자는 그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법률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조력의사결정과 후견인제도 같은 대리의사결정의 차이다.

성년후견제도폐지추진위원회 고관철 집행위원장은 “발달장애인의 자기선택권과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성년후견인의 부당한 활용을 방지하는 법률들이 나오고 있으며 피성년후견인 본인의 법적 능력이 정말로 부족한 것으로 증명된 후에도 대리권은 부족한 범위로만 권한을 한정하도록 규정이 바뀌고 있는 추세”임을 밝혔다.

미국의 경우 의료관련 대리결정인, 생활보조급부에 대한 대리수취인 등 제한적 후견, 일시적 후견으로 특정행위에 대해서만 후견인의 지원을 받도록 운영되고 있으며 또한 자기주장을 위한 지원 훈련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바르게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영국은 Circle Network라는 장애인단체 중심의 장애인 의사결정지원 모니터링 및 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1992년에 후견법률에 대한 전면 개정을 단행한 바 있는데 이것은 피후견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필요성의 원칙, 가변성의 원칙, 자기결정의 원칙, 권리보전의 원칙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후견을 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후견개시를 할 수 없도록 했으며 후견인의 권한도 상당히 좁게 설정하고 후견의 지속기간을 5년 이내로 제한하는 등 여러 제한을 둠으로써 성년후견제의 실천에 있어 장애인의 권리를 강화했다.

 

“민법 개정, 단어만 기계적으로 변경”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김의수 선임연구원은 “구 민법상의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개정 민법에서 ‘성년후견인’, ‘한정후견인’으로 단순 개정함에 따라 과거의 권리제한이 현재에도 고스란히 이전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지난해 울산 A초등학교 장애인근로자 특별고용사업과 관련 채용 공고문에서 지원자격을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의 규정에 따른 장애인’ 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 제3항에 따른 해당 지방보훈지청장이 발급한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담당업무를 지장 없이 수행 가능한 사람’으로 공고했다.

지원 결격 사유자를 규정한 ‘울산광역시교육청 교육공무직 채용 및 관리 조례 시행규칙 제7조의 결격사유’에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으로 명시해 발달장애인의 지원자격조차도 박탈했다.

김 연구원은 “종전의 울산광역시교육청 채용 및 관리 조례 시행규칙에서 고용 제한을 받는 대상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으로 기계적으로 교체함에 따라 성년후견을 신청한 장애인들의 공무담임권이 제한되고 있다.”며 “참고로 부산시 및 경기도 교육청 소관 현행 자치법규에서는 해당 용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자는 모집·채용, 임금 및 복리후생, 교육·배치·승진·전보, 정년·퇴직·해고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0조(차별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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