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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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5.09.18 09:45
  • 수정 2015-09-18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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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서는 ‘모든 장애인들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장애인들이 이러한 권리를 완전히 향유하고 지역사회 통합 및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또한 시설이나 병원 기관이 아닌 지역사회에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당한 법률의 제정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잘못된 인식이 바뀌고 난 뒤에는 너무나 늦다. 때로는 법이 먼저 시민의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정부의 잘못된 예산집행이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거주 막아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률 제정 움직임
 
정신장애인들의 염원인 정신장애인의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움직임이 첫발을 뗐다. 지난 7월 21일에는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고, 사흘 후인 24일에는 토론회의 내용을 반영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춘진 위원장이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토론회에 참여했던 염형국 공인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는, 자유를 꿈꾸며 ‘탈시설’했던 7인의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에서 1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한 정신장애인이 병원에서 퇴원해 지역사회에 나오게 된 것을 ‘땅 딛는 기쁨’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걷는 자유, 길거리를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구경할 자유 등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억압되고 있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염 변호사는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를 막는 몇 가지 장애요인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예산집행이라고 주장한다. 2009년 기준 정신보건사업 예산으로 책정된 750억 원 중에서 정신병원 및 시설에 지원되는 금액은 732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97%에 해당하나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와 관련된 예산은 15억 원으로 3%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사회복귀를 위한 정신질환자사회복귀시설은 2004년 7월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양돼, 지자체 보조금으로 어렵게 운영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 70%에 이르는 의료급여환자의 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지역사회서비스는 지자체가 떠맡는 구조는 당연히 정신병원의 장기입원을 조장하는 큰 요인이 된다.
2013년 4월 OECD가 회원국의 보건의료 현황을 2년마다 분석해 배포하는 ‘OECD Health at a Glance 2013’에서도 한국의 정신보건의 문제점으로 OECD 평균보다 높은 입원횟수(19.4% : 12.9%)와 높은 입원율, 지역사회 의료부재로 인한 입원중심 치료방법 등이 거론돼 개선을 요했다.
가족은 정신장애인을 강제 입원시키고, 정부는 그들을 사회와 차단된 병원에서 관리하도록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하고, 정신의료기관은 예산지원을 통해 환자 중심이 아닌 운영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견고한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정부예산집행의 방향을 정신보건기관에서 지역사회 정착지원으로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정신장애인?…아직도 편견 가득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개념에 관한 고찰(장애인복지연구 6권 1호, 한국장애인개발원 저, 이하 복지연구)’ 논문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편견 중 가장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전국 자치법규 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조항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자치법규 차별 조문수의 60%를 정신장애인 차별 조문수가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사회와 일상생활 전반에서 편견과 차별은 물론, 희화화의 소재가 되거나, 때로는 과장된 공포의 대상으로 정신장애인은 ‘단골 메뉴’나 다름없다.
2013년 대국민 정신질환 태도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위험성 정도에 대해 응답자의 약 70%가 ‘위험하다’고 했으며, 정신질환자에게 거주공간을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김성희 연구위원이 보건복지포럼 8월호에 보고한 ‘장애인의 차별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 결혼과 취업 모두 정신적 장애인의 차별 경험이 50% 이상이었고, 직장생활에서도 타 유형보다 정신적 장애인의 차별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소득(임금)과 동료관계에서의 차별 경험이 약 47% 수준이었다. 또한 장애 때문에 본인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67.5%로 실제 체감하는 차별 수준도 높았다.
정신장애인의 출현율은 2011년 기준 전국 15개 유형 중 6번째로 높아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지적장애, 신장장애 다음으로 빠르게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15개 유형 중 장애인등록률은 9위(2011년)에 머물고 있었다.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그 이유로 40.1%가 ‘정신장애인임을 알리기 싫어서’라고 응답해 사회적 낙인이 정신장애인을 얼마나 위축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염 변호사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구가 전 국민의 14.4%에 육박해 약 466만 명에 이르며,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우울증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아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치료를 두려워하거나, 정신이 아프면 몸이 아픈 것처럼 병원에 가야 하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 정신장애인은 우리 도처에 있으며,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사각지대에 처한 열약한 삶
 
‘복지연구’에 따르면, 고용 및 소득 수준도 적잖은 문제가 많았다. 정신장애인의 고등학교 이상 비율은 59.7%로 15개 장애유형 중 간장애 다음으로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은 85.7%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전체 장애인구의 평균보다 1.4배 많았다.
또한 정신장애인의 월 평균 임금 수준도 53만원으로 자폐성장애 38만원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심지어 직무 역시 전체 장애인의 평균 30.1%가 단순노무 종사자인 데 비해 정신장애인의 경우 약 2배가 단순노무에 집중돼 있었다.
취업을 할 수 없다보니, 빈곤에 시달리는 것 역시 당연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여부로 정신장애인의 절대적 빈곤율을 추정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구(추정) 260만여 명 중에 약 17%가 절대적 빈곤자였으며, 정신장애인은 지체장애, 뇌병변 다음으로 빈곤율이 높았다. 또한 추정 정신장애인 10만3894명 중 5만9220명(57%)이 절대적 빈곤층에 놓여 있어 과반 이상이 생계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소유 역시 42.8%로 전체 장애 평균 58.9%에 비해 낮았다. 이는 15개 장애유형 중 가장 낮은 것이다.
활동보조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염 변호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병원이나 시설에서 퇴원해 지역사회 및 가정으로 복귀하는 데 필요한 일상생활 지원 및 돌봄 지원에 대한 욕구가 높았으나 단 1.1%만이 활동보조를 지원 받고 있는데, 이는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이 활동지원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신체장애인과 동일한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에 의한 방문조사에서 200점 이상의 평점을 받아야 하는데, 정신장애인의 경우 일상생활 동작영역에서 어려움이 크지 않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얻기 어려워 많은 수가 활동보조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왜 필요한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신장애인은 타 장애인보다 취업, 교육, 문화생활 등에 있어서 더 많은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로 인한 인권침해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을 비롯한 현행 장애인 관련법은 신체적 장애인 위주의 지원과 보호를 규정하고 있으며 정신보건법은 병원 입원과 치료 등 의료적인 부분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15개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인은 보건복지부 내 담당부서가 정신건강정책국이지만 나머지 14개 유형은 장애인정책국이 담당부서로 이원화돼 있다. 이는 타 장애인과 달리 정신장애인은 일종의 환자로 분류돼 보건의 측면에서만 고려될 뿐, 장애인으로서의 권리, 복지의 측면은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로의 통합은 절대적으로 복지의 측면이 주된 영역이 돼야 하므로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제정법에 담긴 주요 내용은?
 
통칭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이 법은 정신장애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정신장애인의 특성 및 복지 욕구에 적합한 체계적인 지원과 효과적인 권리보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정신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정신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은 정신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정신장애인지원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계획수립 및 정책의 수립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중앙정신장애인복지위원회를, 시·도지사 소속으로 지역정신장애인복지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했다.
또한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은 복지서비스의 신청을 받은 즉시 관할 지역의 지역정신장애인복지지원센터에 복지서비스 대상자 여부 등에 관한 심사를 의뢰하고 그 심사결과를 고려해 복지서비스 대상자로의 선정 여부 및 복지서비스 내용 등을 결정하도록 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장애인을 위하여 복지서비스 개발, 고용 및 직업훈련 지원, 평생교육 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지원, 소득보장, 지역사회 거주·복귀 지원, 심리·사회적 재활지원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장애인의 가족을 위하여 정보제공과 교육, 상담지원, 휴식지원 등을 실시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하여 중앙정신장애인복지지원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고,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은 복지서비스 대상자의 심사, 정신장애인의 권리보호활동,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상담 등을 담당하는 지역정신장애인복지지원센터를 설치하도록 했다.
또한 정신장애인생활시설·정신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 등 이 법에 의한 정신장애인복지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제고하기 위하여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하여 필요한 각종 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참조: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장애인복지연구 6권 1호(한국장애인개발원), 보건복지포럼 8월호(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Health at a Gla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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