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유사중복사업 통폐합으로 존폐 기로에 선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 전인옥 센터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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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유사중복사업 통폐합으로 존폐 기로에 선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 전인옥 센터장을 만나다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5.09.04 09:39
  • 수정 2015-09-04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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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정부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각각 운영하는 ‘여성장애인 교육지원사업’과 ‘여성장애인 사회참여확대 지원사업’을 통폐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여가부의 동 사업 일환으로 22개 장애여성단체에 부설 운영되던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의 예산이 모조리 삭감돼 여성장애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장애‘여성’으로서의 성인지적 관점을 강조하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부설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 전인옥 센터장을 만났다. 

 

 

 

‘장애’여성 아닌 장애‘여성’…인식 바꿔야 할 때

 

효율성만을 위한 사업 통폐합?

행정편의주의적 발상…개별성 인정해야

 

지난 9월 2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직장인들 사이로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 전인옥 센터장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정부의 여성장애인사업 통폐합 및 예산삭감으로 인한 어울림센터 폐지를 반대하고, 예산증액 및 장애여성정책 수립, 여가부 사업 복구를 위한 릴레이 시위로 전 센터장은 열두 번째로 국회 앞에 섰다.

흔들림 없는 꼿꼿한 자세로 정해진 시간까지 시위를 마친 전 센터장은, 몸은 전혀 힘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좋지 않다는 심경을 먼저 전했다.

“복잡한 마음이었죠. 바쁘게 오가는 시민들 사이에 서있다 보니, 마치 시청률이 낮은 방송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지난 8월 3일, 기획재정부는 복지부가 제출한 두 사업의 내년도 예산 26억 가운데 복지부의 교육지원사업 예산인 8억만을 책정했다. 정부는 통폐합을 하되, 지원이 축소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센터를 운영할 예산이 모조리 삭감됐으니 사실상 센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효율성’을 표면상의 이유로 내세운 정부의 태도에 전 센터장은 혀를 내둘렀다. 각각의 개별성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는 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 과연 정부부처로서 취할 수 있는 올바른 태도냐는 것이다.

2016년이 오기까지 불과 3개월여가 남은 이 시점, 곧 사라질지도 모를 현재 센터의 분위기는 어떨까.

“정부부처 등에 대한 배신감을 넘어서, 일단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생계 걱정이 크죠. 내년부터 당장 실업자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센터의 존속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있다고 봐요.”

전 센터장이 생각하는 이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센터의 존속 여부를 넘은 ‘가치’의 문제다.

“우리 몫을 지켜야 된다는 것보다도, 과연 무엇을 위해서 지켜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같이 가야죠. 센터 운영 자체가 힘든 상황이지만, 설령 운영이 된다고 해도 복지부로 통폐합 되는 것 자체가 큰 문제예요. 전 여가부에서 장애여성 사업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무슨 얘기까지 나오냐면, 여성가족부에 법인 등록된 장애여성단체인 ‘내일을여는멋진여성’과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두 법인까지 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고까지 해요. 그럼 여가부에서는 무엇을 가지고 장애여성 정책을 수립할까요?”

현재 정부에서 주장하는 복지부로의 통폐합 조정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두 사업 내용이 유사하다는 것과, 복지부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정책 인프라가 잘 구성돼 있는 부처라는 것, 그리고 장애여성들이 복지부로의 통폐합을 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센터장은 실상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숫자로 단순 비교하면 맞을 지도 모르죠. 먼저 복지부에서는 복지부의 교육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에 설문조사를 했어요. 당연히 복지부를 주무부처로 원하는 답변이 높았고요. 그 다음에는 어울림센터 22개소에 물었어요. 복지부의 교육지원사업도 진행하던 연대 3곳과, 장애인복지관 9곳이 복지부를 원했어요. 한 곳은 기권을 했고요. 그리고 나머지 9개 단체가 여가부를 원했어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장애인복지관은 복지부 소속 기관이고, 시각, 청각 등 장애유형 단체는 여가부를 원했어요. 그런데 이걸 두고, 7월에 여성상임위 방청을 했는데, 여가부 관계자가 ‘저희도 여가부에서 장애여성 사업을 하고 싶었으나 장애여성들이 복지부를 원했다’고 하더군요.”

또한 정부가 표면적인 통폐합 이유로 밝힌 ‘유사중복사업’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복지부의 교육지원사업은 ‘저학력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초교육에 국한된 사업이기에, 만약 그 이유로 통폐합을 하려 한다면 교육지원사업을 센터로 폐합시켰어야 한다는 것이다.

“센터는 맞춤 상담부터 시작해요. 여성장애인의 문제를 단순한 기초교육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애초에 센터는 여성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를 하는 것이 목적인데, 목적 자체가 다르고 과정도 다르고요.”

 

여가부의 존재 의미에 대한 성찰 필요

 

지난 2010년 4월 전국에서 일괄적으로 센터가 개소한 뒤, 대체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애여성들을 지원하던 여성단체 등에는 불빛을 단 셈이 됐다. 센터가 생기자 장애여성들이 찾아왔다.

“제대로 된 사회 참여를 확대해보자는 생각으로 달렸어요. 장애여성들도 ‘전문가’로 키우려는 욕심도 있었죠. 사회참여가 꼭 취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참여 수단으로 취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사회나 정부에서도 여성장애인들의 취업 확대 등을 바라고 있어서 기대에도 부응하고 싶었어요.”

센터는 새로운 직업 영역을 개척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천천히 잘 익은 열매를 맺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동료상담전문가, 성희롱예방전문가, 인권강사전문가 등 한 사람씩 전문가로 양성하며 열매를 맺고 있던 차에, 단 5년 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전 센터장은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복지부로 여가부의 사회참여지원사업이 이관이 되면 현실적으로 나은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역시 전 센터장이 앞서 얘기한 ‘근본적 물음’에 부딪친다.

“여가부 역시 하나의 굵직한, 상징성을 띠고 있던 여성사업 자체가 사라지고, 예산 역시 삭감돼 결과적으로 ‘축소’되고 힘을 잃는 것이 되지요. 그것은 곧 모든 여성들의 지위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이 돼요.”

전 센터장은 꾸준히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장애여성들을 위한 성인지적 관점을 강조해왔다. ‘장애’여성을 넘어, 장애‘여성’으로서 여성장애인들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얼마 전에 국무총리실에서 정책관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도 여성이면서 계속 유사중복사업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시더군요. ‘당신은 여성이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런 논리라면, 여성가족부가 있을 필요도, 여성사업을 별도로 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요? 장애인정책에 여성사업 하나 끼워 넣는 식으로 해버리면 되니까요. 여성의 성인지적 관점은 그나마 여가부에 하에 있었기 때문에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고충 등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겁니다. 복지부에서 장애인정책 인프라를 아무리 잘 구축했어도, 그동안 ‘장애여성’이라는 존재를 위한 제대로 된 사업을 수립한 적이 있나요? 출산 및 양육 지원,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었잖아요. 복지부 이관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여가부에는 장애인 전문가가 없다, 장애관점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친다면 복지부에는 ‘여성관점’이 부족하죠.”

전 센터장은 장애여성을 넘어, 현 정부의 이런 행보가 결국 ‘여가부 축소’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그게 여성들의 인권보장에 있어 힘을 잃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여성이 섞이지 않은 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노동자가 있고, 탈북민 중에서도 탈북여성이 따로 있습니다. 그걸 고용노동부로 넘기고, 통일부로 넘기는 식이라면 ‘여성’의 성인지적 관점으로 여성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여성가족부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냐는 거죠.”

 

여성장애인, 대상·타자 아닌 ‘주체’로 바로 서자

정책결정과정에 장애여성 당사자 참여 절실

 

여성, 심지어 장애인, 사회 최약자일 수밖에 없는 장애여성들의 삶에 있어서 전 센터장이 생각하는 가장 필요한 점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복지 지원 수준이 아닌, 여성이 ‘대상’,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 서는 것이다.

“여성장애인은 기본적으로 여성계 내에서도 소외되고, 남성 중심 장애계 내에서도 소외됩니다. 여성만의 독특한 어려움과 차별이 장애라는 핸디캡과 같이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정책에 묻혀서 장애여성정책이 따로 나오기가 어려운 현실이에요.”

물론 장애여성 관련 정책이나 지원 전부가 단순한 탁상공론이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전문가 등이 장애여성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와 그 과정과 달리 정책화할 때 상당 부분 희석이 된다고 전 센터장은 지적한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장애여성정책을 만들려면 여성장애인들이 항상 그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를 해야 해요. 장애여성들이 단순히 연구대상에 머물지 않고, 참여를 해야 현실적이고 정말 필요한 정책이 나올 수 있어요. 장애인의 인권과, 여성의 인권이 따로 얘기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그걸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인권을 논할 때도 ‘장애여성’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해 현실적인 인권보장을 수립해야 하고요.”

여성, 장애여성으로서의 관점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전 센터장이지만 자신 역시 완전히 기존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항상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알면서도, 저 역시 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사업계획서를 쓴다거나 할 때,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여길 때가 있어요.”

정권의 부침에 따라 여가부가 방향성을 못 찾거나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전 센터장은 강조했다. 결국 전 센터장이 택한 방법은 여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야 해요. 제 주위에도 자신은 여성으로서 차별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동안 남성 위주 사회에 너무 길들여진 것이죠. 여성이 소리를 내면 시끄럽다고들 하는데, 시끄러워져야 합니다.”

장애여성, 비장애여성을 넘어, 전 여성들의 동류의식은 물론, 남성들 역시 배제가 아닌 공존을 위한 ‘시끄러움’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지는 전 센터장 역시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전한다.

“그래도 이 여성단체 부설 센터에 속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성장애인이라는 공감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정부부처와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장애인들끼리 정보를 빨리 입수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생각보다 참 중요하더군요. 목적한 바를 다는 못 이뤄도, 당장 끝이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지 선한 의지는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센터장이 이번 사태로 인해 외부에 나갔다 돌아오면 센터의 직원들은 한 마음으로 절실히 묻는다고 한다. 길이 보이느냐고. 하지만 그때마다 전 센터장은 굳세게 말한다. “지금은 모르지만, 분명히 희망은 있어.”라고.

“어쩌면 이번 계기를 통해 여성장애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편안한 상태가 지속이 되면 사람들이 안이해지잖아요? 그런 것을 경계하는 하나의 경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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