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재난 위기관리 시스템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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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재난 위기관리 시스템은 있는가?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5.01.19 11:13
  • 수정 2015-01-19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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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자연재해, 화재 등 각종 사고 앞에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장애인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 ‘장애인 재난 위기관리 시스템의 현황과 과제’란 주제의 정책토론회가 지난 12월 17일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개발원 주최로 열렸다.

장애인 재난대응 취약…사망-사고 위험률 높아

장애인 등 안전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재난관리정책 개발돼야

이날 토론회에서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한국법제연구원 나채준 박사는 “장애인 각자의 재난대응 능력수준에 따른 맞춤형의 재난관리정책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재난대응 정도에 따라 지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해 효과적인 재난대응을 위한 재난관련 협력 체계 구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재난 발생 시 비장애인과 다른 특별한 제약 상황이 발생하며 재난대응의 취약성으로 인해 사망 또는 사고에 대한 위험률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자폐성장애나 뇌병변장애, 지적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의 인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의 작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 박사는 “서울시는 지체장애인용 재난위기관리 매뉴얼과 장애인 픽토그램(Pictogram) 활용가이드를 인쇄물로 제작해 배포하거나 인터넷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 매뉴얼에는 위기대처 요령과 안전사고 예방방법, 생활 속 위험요소 점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그러나 장애유형이 같더라도 장애정도와 주거지역, 보호자의 유무,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환경 등 장애인 개개인이 가진 조건은 다양하기 때문에 장애인을 획일적인 매뉴얼과 대응체계로 관리하는 것은 실효성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 맞춤형 재난관리정책 개발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나 박사는 또한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편의시설 기준 재정립 등 현행 장애인복지체계에 대한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편의시설 기준= 현행 법령에서 장애인 등의 이동권 확보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에서 규정하고, 재해 안전성 및 설비에 대해서는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규정돼 있어 상호 연계가 부족하다.

편의증진법과 건축법 사이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물 피난규칙은 편의증진법에서 규정한 기준을 최소기준으로 삼고 이를 각 건축물의 특성을 고려하여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LSC(Life Safety Code) 규정에서 기본적으로 계단, 복도 등의 피난시설을 미국 장애인 디자인 가이드라인 규정을 준수하도록 규정하는 것도 이러한 취지다.

▪재난 경보체계 마련= 재난대비를 위해 지역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지원 연계망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은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서는 장애인 스스로 사고가 났음을 인지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장애인 등록 신청 시 작성된 일부 정보를 활용해 중앙소방본부 등 재난 관련 기관과 연계・공유하여 사고발생 시 현장상황이 장애인과 보호자・후견인에게 재난문자 발송 등 즉시 통보되도록 하는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2013년 5월부터 실시 중인 중증장애인 응급안전서비스사업 시범사업을 확대해 장애인에게 기본적 서비스로 주거시설에 안전관리시스템과 경보장치를 설치해 사전예방과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재난 경보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 교육 실시= 대부분의 재난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므로 예방이나 피해의 최소화는 평소 재난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사전교육이 있어야 가능하다.

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 내 지정 대피소 및 대피요령 등 재난안전사고에 대비한 사전교육과 재난안전 사고 대응지침 및 매뉴얼의 제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재난대응 교육은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 교육과 훈련이 실시되어야 그 효과가 있고 재난대응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예컨대 복지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재난발생에 대비한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재난대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재난대응 지침 및 매뉴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장애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예를 들어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단체, 협회, 공공기관, 지자체, 보건소, 장애인근로사업장과 같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관련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나 박사는 “우리나라 재난안전관리의 기본법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제22조에서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의 수립에 관한 규정을 두고 동조 제8항에서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정작 시행령엔 재난에 관한 대책(제1호), 생활안전, 교통안전, 산업안전, 시설안전, 범죄안전, 식품안전과 그밖에 이에 준하는 안전관리에 관한 대책(제2호)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장애인은 재난 등 각종 위험에 방치돼 있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안전관리계획은 미흡하다.”며 법 개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장애인 화재사망자, 비장애인의 4배 이상”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박홍구 부회장이 지난 12월 24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맥주가게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관할 광진경찰서는 고 박 부회장이 영업 전인 맥주가게 골방에 홀로 있다가 불이 나자 입구 쪽으로 대피하려 했고 입구 바로 앞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는 전동휠체어 옆에 고 박 부회장이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현장 감식 결과 방화나 자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며 “시신을 1차 부검한 결과 화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은 화재 발생 시 이동의 문제로 인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두 번째 발제를 통해 서울시소방재난본부 박경서 주임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2013년 지체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장애인 안전교육 교범 등을 활용 중이며 2014년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난대응 매뉴얼의 개발을 추진 중”임을 밝혔다.

지난 2009년부터 2014년 3월까지 서울시 장애인 화재 사고 발생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사상자는 전체 사상자의 4.9%(사망 19.6%, 부상 2.4%)로 나타났으며 특히 사망자 비율은 비장애인 사상자의 12.1%인 반면 장애인 사상자의 경우 57.4%로 4배 이상 높았다.

장애인 화재 사상자 발생 시간은 오후 3시~5시가 가장 많았고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5시~7시, 새벽 1시~3시 순이었고 사상자 연령대는 50대가 15명, 70대 12명, 40대 11명, 60대 10명 순이었다.

화재 사상 원인으로는 연기 유독가스의 흡입에 의한 사상이 가장 많았으며 화재 발생 장소는 단독, 공동주택 등 주거 공간이 85%로 압도적이었다.

휠체어 사고 발생 원인별로는 낙상, 추락 등의 사고 부상이 223건으로 교통사고 119건에 비해 많았다.

박 주임은 “현재 중증장애인 응급알림 e-서비스, 중증 독거장애인 및 거주시설 긴급구조체계 등을 갖춰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중증장애인 응급알림 e-서비스는 2013년 11월부터 2014년까지 시범사업으로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로서 독거, 취약가구, 가족의 직장, 학교생활 등으로 상시보호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대상(서울의 경우 10개 자치구 1242가구)으로 응급버튼, 맥박계, 가스감지센서, 화재감지센서를 제공하고 지역센터를 통해 관리가 이뤄진다.

중증 독거장애인 및 거주시설 긴급구조체계는 2013년 10월부터 운영 중이며 독거 중증장애인 335명과 중증장애인 6만5536명, 장애인거주시설 378개소(3,568명)를 대상으로 U-119 안심콜 서비스 및 소방안전지도를 연계해 긴급구조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재난 유형별 위기상황 대비를 위해 의용소방대원 4,521명과 중증 독거장애인을 연계한 구조체계와 정보관리→사전교류→주의보 발령→재난 시 최우선 구조 등의 매뉴얼을 운영 중이다.

복지부, 시설거주 장애인 피난 매뉴얼 개발운영 중

세 번째 발제에서 한국장애인개발원 편의증진부 김인순 부장은 “국내 장애인에 대한 재난 등 위기상황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세부적 매뉴얼 개발과 정책이 부재한 것이 현실”임을 밝혔다.

김 부장은 “보건복지부는 2013년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따른 장애인 인권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장애인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개발 및 보급을 추진 중”이라며 지난 2014년 8월 복지부가 작성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화재 등의 재난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난 발생에 대비한 교육·훈련용으로 시범 제작한 ‘장애인을 위한 피난 매뉴얼’의 내용을 설명했다.

시설거주 장애인을 위한 피난 매뉴얼은 자력 대피 가능한 장애인과 자력 대피 불가능한 장애인을 구분해 작성됐다.

이동 시 어려움이 있지만 화재 등 비상시에는 자력으로 이동 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몸을 끄는 방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빠른 시간 내 출구방향으로 이동한다.

자력 대피가 불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억지로 휠체어에 태우기보다는 침대 매트 등을 이용해 끄는 방법으로 화재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며 침대로 피난시킬 경우 최대한 인접한 방화구역으로 일시 피난시켜 구조를 기다린다.

계단 피난 시 장애인은 화재 알림벨 등을 통해 관리자나 도우미의 도움을 적극 요청하며 도우미 등은 2~4명이 휠체어를 들거나 장애인을 들어서 대피시킨다.

시설 관리자는 화재 발생 시 화재 알림벨을 울리고 손전등, 방독면 등을 챙겨야 하며 출입구를 우선 개방해 장애인이 출입구 근처에서 탈출에 실패하지 않도록 조치한다.

지적-시각장애 등 장애유형별 맞춤형

재난 대응 매뉴얼 개발 시급한 상황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고명균 사무처장은 “지난 2012년 10월에 발생한 파주 장애인 화재 사망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오누이가 당한 사회적 참사로 지적장애 가정의 화재안전 관리에 아무런 대책도 없음을 드러낸 사건”이었음을 주장했다.

사고로 생명을 읽은 누나는 특수학교에 다니며 경계선급 지적장애인으로 장애등록은 받지 않았고 동생은 뇌병변과 청각 중복장애인으로 마땅한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다가 화재가 발생하자 불길 밖으로 피해야 하는데 방으로 피해 참변을 당했다.

지적장애인은 성인일수록, 농촌에 거주할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국가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 이용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파주 장애인 화재 사고처럼 사회적 무관심속에 방치된 가운데 불의의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고 처장은 “아무리 잘 만든 매뉴얼이 있어도 실제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막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지적, 발달장애인의 경우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재난안전매뉴얼은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임을 주장했다.

고 처장은, “주간보호, 단기보호, 보호작업장 등 소규모 이용시설의 경우 재난대피훈련 점검이 형식적 점검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있는 소화기 등은 지적장애인이 사용법을 전혀 모르고 간혹 소화기 사용법을 자체적으로 훈련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장애 특성상 1년에 3~4회 훈련으로는 그 사용방법을 숙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지적장애인의 경우 단기적인 훈련만으로는 재난대응 시스템을 익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며 생활환경에 익숙한 보호자 등과 함께 주기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은 “지난 9월 시각장애인 최 모씨가 용산역에서 선로에 추락해 약 3분 후 들어오는 전철에 치어 큰 부상을 입은 사건과 같이 지하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이 선로 등에 추락하는 사고가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연 2회 이상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러한 사고가 바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재난이 되는 것임을 주장했다.

강 실장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비시각장애인들이야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곳으로 피난하겠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전혀 대응할 수 없게 되며 재난 발생 시 많은 소음이 동반 발생하고 주위가 어수선해 지면서 시각장애인이 다른 감각을 활용하여 이동할 수도 없게 된다.”며 시각장애인들은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비장애인들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됨을 강조했다.

 강 실장은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안전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며 반복적인 체험 훈련이 동반돼야 한다.”며 “실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상 및 배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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