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장애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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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장애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 이재상 기자
  • 승인 2014.06.05 22:44
  • 수정 2014-06-05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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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장애인복지학회 춘계 학술대회가 ‘장애인의 사회적 모델에 대한 재평가: 지향과 한계’를 주제로 지난달 30일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열렸다. 김용득 한국장애인복지학회장은 “학회는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 실천의 체계를 장애에 더 민감할 수 있도록 재편하고 구체화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현행 우리나라 장애평가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현행 단순히 의학적 장애만으로 장애정도 평가가 문제

직업-능력-사회경제적 요소 고려…의료모형과 사회모형 상호보완 필요

 

현행 장애평가 문제점은

장애유형에 따른 차별

 

▪장애평가의 역사

대한의학회 정책(장애평가)이사인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신경의학과 이경석 교수는 “고대에는 장애인의 양육을 금지했고 중세에도 장애란 나쁜 것, 불쌍한 것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가 구빈법(Poor Law)을 제정하면서 지체장애인, 허약자, 노인, 맹인에 대해 처음으로 복지정책을 펴기 시작했다.”면서 장애평가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장애인복지가 시작되자마자 장애를 흉내내거나 과장하는 가짜 장애인이 나타났고 특정 장애의 유형화와 이를 이용하려는 가짜 장애인의 증가는 18세기에 이르러 장애를 의학적으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2001년 WHO가 ICF를 공식 분류기준으로 인정함으로써 세계 여러 나라의 장애인복지와 사회보장이 개선됐다.

2006년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인은 장기적인 손상(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과 여러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가 제한된 사람을 포함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의료장애(장기적 손상)와 노동 또는 경제장애(장벽과 상호작용), 사회장애(사회참여 제한)까지 포함된 개념까지 확대됐고 우리나라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장애등급 규정한 법령 20여개가 넘고

법령마다 장애등급과 기준 서로 달라

 

▪현행 장애평가 기준 문제점

이 교수는 “장애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바뀌든 장애평가 없는 장애인 복지는 없다. 선진국에서도 장애인연금이나 서비스 수급자를 결정할 때 의학적 상태에 대한 평가 없이 수급자를 선정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현행 장애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설명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평가 기준은 15개 장애유형에 대해 200쪽이 되지 않는 작은 책자 수준에 불과하며 가장 큰 문제는 장애유형에 따른 차별이라는 것.

실제로 아무리 큰 장애가 있더라도 그 장애가 15개 유형에 포함되지 않으면 장애로 인정되지 않으며 장애등급을 규정한 법령 20여개가 넘고 있으나 법령마다 장애등급과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것.

또한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과거 육체노동에 의한 노동력의 비중이 미세한 손놀림이나 뇌기능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

 

객관적인 평가기준 대신 심사위원

경험에 의존해 등급 결정이 문제

 

이경석 교수는 “거짓이나 과장을 가려내겠다는 의도로 모든 등급의 장애인을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심사를 하고 있는데 자세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 대신 심사위원의 경험에 의존해 등급을 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안의 경험에 의존하다보니 지역이나 개인에 따른 오차가 커서 불만과 이의신청만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평가기준과 제도를 과학화하고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장애등급을 폐지하겠다고 한다.”면서 “이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것만큼 가져가는 공산주의 공약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현행 장애평가 기준은 신체상의 이상 여부를 의사가 확인하고 진단하면 바로 장애등급이 결정되는 의학적 모형으로 장애 당사자의 직업이나 능력, 사회경제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신체나 정신의 의학적 장애만으로 장애정도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장애정도에 대한 평가를 현행 의료모형 대신 사회적 차별 때문에 장애가 생겼다는 사회모형에 따를 경우 사회차별의 크기나 종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사회차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이에 이 교수는 “전통적인 의료모형의 장애개념에 비해 사회모형의 장애개념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모형이 의료모형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의료모형과 사회모형을 상호 보완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때”임을 주장했다.

 

장애의 정의에 따라 후속대책 달라져

장애인에 대한 정의는 핵심적인 사항

 

▪현재 장애학의 사회적 접근론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지수 교수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장애문제를 개인적, 의료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의료모델을 거부하고 사회적, 환경적 제약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설명방식”임을 밝혔다.

사회적 모델은 1970년대 말 핀켈스타인(Vic Finkelstein), 올리버(Michael Oliver) 등 영국의 장애인 사회학자들과 UPIAS로 대표되는 장애인단체에 의해 시작됐다.

UPIAS가 1976년에 출판한 장애의 기본원칙이란 책을 통해 “우리가 보기에,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 장애는 우리가 가진 손상 위에 부과되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필연적인 이유 없이 사회에 대한 완전한 참여로부터 고립되고 배제됨으로서 초래되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은 사회 안에서 억압받는 집단이 된다.”고 지적했다.

올리브는 장애를 개인적 비극으로만 정의하는지 사회적 억압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장애에 대한 후속대책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과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을 구분해 장애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개입에서 장애인에 대한 정의는 핵심적인 사항임을 강조했다.

손상-장애-핸디캡이라는 WHO의 장애에 대한 정의는 손상을 기능의 비정상으로, 장애를 정상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핸디캡을 정상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신체구조에서, 일상적인 수행능력에서, 사회적 역할수행에서의 정상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 정상성은 상황적, 문화적으로 상대적인 것으로 읽히지 않고 객관적이고 고정적인 어떤 상태로 간주한다는 것, 즉 WHO의 장애에 대한 정의는 사회가 아니라 정상성을 갖지 못한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을 유지한 것으로 이는 곧 의료적 모델로 귀결된다.

의료적 모델이란 장애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장애문제 해결을 단순한 손상의 치료로만 보는 관점, 의학적 진단이 단지 몸에 대한 치료뿐 아니라 한 인간의 기본 생활양식 교육, 고용 등 모든 영역에 대한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경향, 국가에 의한 정책과 서비스가 의료적 진단에 준해 결정되고 전달되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

불변적이고 객관적인 ‘정상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은 ‘비정상’을 가려내고 탈락시키는 과정을 통해 규명되는 것이고 이는 의료적 진단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다.

올리버는 장애문제를 개인이 가진 기능상의 한계로 환원시키고 생물학적 병리학에 이바지하지 않으면서 장애의 원인이 사회와 사회조직 내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새로운 장애의 정의를 주장한다.

손상= 사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없는 것, 혹은 사지, 기관, 신체구조에 결함을 가진 것.

장애=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을 거의 혹은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들을 사회활동의 주류로부터 배제시키는 우리 시대 사회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

이지수 교수는 “사회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변화됨에 따라 개인은 임금 노동자로 개별화되는데 농업공동체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장애인들이 자본주의제도 하에서는 도시와 공장제 시스템의 말단에서 노동자로 편입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가는 의료적 진단을 통해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과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을 구분해내야 했고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은 시설로 보내 격리, 통제시켰고 빈민법 하에서 극빈자는 어린이, 노약자, 광인, 병자 등의 범주로 분리되던 것을 어린이를 제외한 나머지 범주는 장애인으로 묶인 채 사회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올리버 등 사회적 모델 이론가들은 새로운 장애에 대한 정의를 통해 장애를 손상으로부터 분리해냄으로써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배제와 제약의 근원을 손상으로 귀결시키지 않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사회구조의 변화 때문으로 설명하게 됐다는 것.

이 교수는 “현재까지 장애학자들은 손상과 장애의 이분법,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이분법, 신체 생물적 몸과 사회적 억압의 이분법, 사회경제적 구조와 문화적 가치의 이분법,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을 지양하면서 장애를 복합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며 장애의 복합성과 복합적 장애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갔다.

셰익스피어는 장애를 손상이 있는 사람의 손상, 성격, 태도, 환경, 정책 등의 경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접근하려 했다.

이 상호작용 모델은 ICF로 대표되는 의료·심리·사회적 모델로 이를 통해 손상 정도에 따른 다양한 장애경험을 반영할 수 있으며 개인 차이를 넘어서는 사회적 장벽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이 교수는 “상호작용 이론은 장애인 스스로의 긍정적인 태도, 자존감 및 의료적 치료와 재활, 사회적 장벽제거와 반차별법까지 장애인의 상황을 개선하는 다양한 방법을 포괄하고 있지만 하나의 장애이론이 모든 경우에 대해서 모두 선호할 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모델이 말하는 관점 또한 강조돼야”

 

이어진 토론에서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의 교육, 고용, 의료, 소득 등 다양한 복지영역의 욕구를 장애등급 한가지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 또한 이러한 근거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에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려고 한 것”임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의료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에는 의료적 접근이 핵심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애인연금처럼 소득보장 정책의 경우 개인소득이 핵심이 돼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조 교수는 “장애를 표현하는 여러 모델들 가운데 의료적 모델이 절대적 우위를 점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면 어떤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모델이 말하는 관점 또한 강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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