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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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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21-01-13 19:26:07  |   icon 조회: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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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들은 무의식중에 당과 정부의 유일체계에 걸리는 발언을 해서 이곳에 ....... ]



[weekly chosun] [김영순의 육필 수기] 체포에서 탈북까지 처참했던 나의 35년

김대현 기자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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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무의식중에 당과 정부의 유일체계에 걸리는 발언을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통제구역입니다. 여기서 정말 당과 위대한 수령님을 위해 투신했을 때만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함경남도 요덕군은 서쪽에 맹산군, 북쪽에는 평안남도 대흥군, 동쪽은 금야군, 남쪽은 고원군의 수동 탄광지대와 마주하고 있는 해발 1700m의 험준한 산악지대다. 요덕수용소는 용평리, 평전리, 구읍리, 입석리, 대숙리 등 5개 리를 합쳐서 만들었다.



철조망 속에서 보면 험준한 능선밖에 보이지 않는 지역이다. 철조망이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천혜의 감옥인 셈이다. 수감된 정치범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도주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보위부가 만들어놓은 세계 최고의 격리 감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요덕수용소는 끼니를 연명해 가는 것조차 기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최악의 감옥이었다. 그야말로 죽음을 벗 삼아 살아야만 했다. 수용소에 들어오면 배가 나온 사람도 보름이면 허리가 잘록해졌다. 배급 받는 식량은 통강냉이뿐이었다. 들쥐도 잡아 먹었다. 어미 쥐의 배에 든 털 없는 새끼 쥐가 아이들 식독(食毒)에 가장 좋은 약으로 알려져 쥐도 귀한 형편이었다.



수용소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아버지가 병들어 누웠다. 나는 여자의 몸으로 7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됐다. 새벽 4시30분에 출근하기 위해 3시에 눈을 떴고 어두워서야 귀가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 대가로 받는 게 통강냉이 200g 정도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펠라그라병’, 즉 영양실조로 죽는 이가 많았다.



1970년대 요덕에 수용된 전체 수용인원은 최소 수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요덕군 용평리와 평전리에 수용된 인원만 5000명이 넘었다. 1개 작업반에 성인 노동 인력만 100명이 넘고 가족까지 합치면 400명을 상회했다.



김영순씨 가족이 수용돼 있을 당시 두 개 리에 10개 작업반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5000명 정도가 두 개 리에서 생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요덕군 소재 다섯 개 리로 환산하면 1만5000명 정도다.



수용소에서는 매일 죽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탈출하다 걸린 사람은 공개 총살형에 처해졌고 영양실조와 동상으로 숨진 시체가 집과 들에 즐비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예외 없이 우리 가족에게도 들이닥쳤다. 입소 1년여 만에 아버지도 영양실조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가장 큰 충격은 아들 세영이를 먼저 떠나 보낸 사건이었다. 1973년 여름 큰아들 세영이가 물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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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2/2009010201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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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에게 자기의 운명을 의탁하고, 일할때나, 걸을 때나, 잠잘 때에도 김정일의 사상과 의도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수령우상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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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응원단 일부가 수용소에 수감 .......

...... 남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일절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어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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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함께 출전한 국제 체육행사 때 남한을 방문했던 북한의 미녀응원단<사진> 일부가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지구의 대흥수용소에서 풀려나 최근 중국으로 탈북한 이명호(가명)씨는 “작년 11월쯤 수용소에 21명의 젊은 여자들이 수감됐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남한에 응원단으로 다녀온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현지에서 들은 얘기로는 이들이 남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일절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어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넘었다는 다른 탈북자는 “미녀응원단은 출신성분이 좋은 대학생이나 선전대, 음악대학 학생들로 구성됐다”면서 “이들은 남한으로 떠나기 전에 국가안전보위부에 서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용은 ‘적지(남조선을 적들의 지역이라고 부름)에 가면 장군님의 전사답게 싸운다’ ‘돌아와서는 남조선에서 보고들은 것을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 ‘이를 어기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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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602/200602160463.html








"생매장 前 목 동맥 잘라 묻어"

"발뒤축 대못 박아 돌로 때려 죽이는" 지옥의 수용소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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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안명철(94년 탈북, 회령22호 관리소)은 「그들이 울고 있다」라는 책에서 『보위부원들이 정치범을 생매장하기 전 칼로 정치범의 목 동맥을 잘라 묻어버렸다』『경비대가 기르던 개가 어린 소년들을 잡아먹기도 했는데 오히려 개를 잘 키웠다고 칭찬을 받았다』『쇠줄로 코를 꿰고 발뒤축에 대못을 박아 정치범들을 동원하여 돌로 때려죽였다』는 등의 목격담을 적고 있다.



지난 해 발간된 대한변협의 「2006북한인권백서」는 『일본으로 편지를 쓰다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던 중 사해된 김OO』『햇빛쪼이기를 하면서 풀을 뜯어 먹는 정치범을 AK58식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턱과 등을 내리쳐 현장에서 살해했다』『영하 30도가 넘는 추위에 귀를 막고 가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럭으로 치어서 살해했다』는 등 탈북민들이 수용소에서 목격한 사례들을 적고 있다.



데이빗 호크가 쓴 「감춰진 수용소」에 등장하는 탈북민 이영국(99년 탈북. 요덕15호 관리소)씨는 탈출을 기도했던 한승철이라는 수감자의 공개처형 장면을 이렇게 증언한다.


『한승철은 모든 수감자들이 보는 앞에서 차의 뒤에 묶인 채 죽을 때까지 질질 끌려 다녔으며, 이어 다른 모든 수감자들은 그 옆을 지나가면서 피로 뒤범벅된 시체에 억지로 손을 갖다 대어야 했다. 안성은이라는 또 다른 수감자가 이 끔찍한 일에 반발해 소리쳤을 때 그는 즉시 총에 맞아 죽었다』



탈북민 김용(99년 탈북. 개천14호 관리소)씨의 공개처형 목격 증언이다.


『2년 동안 15명 정도가 간수들에 의해 처형됐고, 더 많은 수가 탄광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번은 김철민이라는 사람이 허가 없이 탄광 입구에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웠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굶주림에 내몰린 또 다른 수감자 갈이용은 가죽 채찍을 훔쳐다가 물에 불린 다음 연한 가죽 부위를 씹어 먹은 것이 발각되어 배설물이 잔뜩 묻은 몽둥이로 입 주위를 세게 맞고 사망했다』



김정일 가계 소문 퍼뜨리면 수용소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처럼 죽어가는 이들은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일까?

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백서2007」은 『정치범수용소 수감 대상은 국가전복음모죄, 반동선동선전죄, 조국반역죄』 등이라며 구체적으로 이렇게 예시한다.


△정치범죄 뿐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가계 및 사생활 정보 유포시킨 간부, △김일성·김정일 정치 비난한 사람, △김정일 비자금 조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 사람, △비자금 조성관련 비리 연루자들, △한국방송 청취자나 3국에서 한국에서 접촉한 사람들, △중국에 친척방문 후 기독교 등 종교단체에 연루된 사람들, △친목회·계와 같은 사적 결사 연루자들



「북한인권백서2007」은 『정치범수용소에는 심지어 「이 세상 힘들어 못 살겠다」는 말을 한다든지 「상점에 비누 한 장, 치약 한 개 파는 것이 없으니 이곳이 상점이냐」고 항의했다가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정치범수용소 수감 시 일체의 재산을 몰수당한 후 야간에 전 가족이 끌려간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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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18769&C_CC=AZ








지옥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 !


리백용(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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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에 소금을 가지고 다니거나 프시(즉, 불을 켜는 차돌 쇠쪼박, 또는 쑥을 말리운 것)을 가지고 다니면 도주기도분자로 몰려서 총살 또는 교수형, 생매장 당한다.



실례로 한승철의 경우가 있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동에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가려다 회령땅에서 잡혀 왔다. 그가 수용소 생활 4년 만에 호주머니에서 소금이 나왔다하여 구역 끝에서부터 구역 끝까지 소련제 차 우와즈 련결차 꼬리에 발목을 쇠줄로 매여 4km을 수인들을 길 량쪽에 세우고 초소 앞에서 끌고 다녔다.



그 결과 허리 가죽과 머리 가죽이 다 벗겨져서 죽었는데, 시체를 교수대에 묶어 놓고 매 사람이 피를 만지게 하고 도주기도분자는 이렇게 죽인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때 경비대 1개 중대 가량이 수인들을 포위하고 기관총과 자동소총으로 성을 쌓고 감시하다가 다른 기미가 나면 총으로 갈긴다. 이날 평북도에서 온 안성은 늙은이(60세)가 죽었다.



일본시기보다 김일성, 김정일이 더 악독하고 파쇼적이다고 말했다는 루명을 쓰고 들어온 사람이다. 그 늙은이가 "사람이 어떻게 그것도 소금 한줌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차에 끌고 다니면서 죽일 수 있느냐. 게다가 죽은 사람을 교수대에 매놓고 산사람으로 하여금 죽은 사람의 피를 만지게 하느냐."고 뛰어나가서 호소하였다.


그때 그는 그런 잔인한 광경을 보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소리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기관총 사격으로 즉사했다.


이런 일은 한 달에 6명 내지 10명 정도 일어난다. 또 산 사람을 생매장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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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어머니·형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1996년 4월6일에서 11월29일 반년 넘게 수용소 비밀감옥에 수감돼 고문을 당한다.

당시 고문의 상흔(傷痕)은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선명히 남아있다. 아래는 수기에 실린 신씨의 기록이다.


『두 명이 달라붙어서 내 옷을 모두 벗겼다. 나는 반항도 하지 않았고 옷이 홀딱 벗긴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는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운 뒤 리모컨을 작동시키니 다리가 천정 쪽으로 올라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쿵』하고 부딪쳤다.


그들은 나를 거꾸로 매단 상태에서 양 팔목을 밧줄로 묶었다. 밧줄을 끌어당기자 내 팔목이 천정 쪽으로 따라 올라갔다. 얼굴은 천정을 향하고 등은 바닥을 향해 공중에 누워있는 모양이 됐다. 바닥에서 약 1m정도 올라간 것 같았다...



옆 사람에게 뭔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숯불이 담긴 통이 들여졌고, 풍구(風具)를 돌려서 숯불을 점점 타오르게 했다. 그리고는 리모콘으로 쇠사슬을 내려 내 등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불에 닿도록 했다. 허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살타는 소리가 지르르르 나고, 살타는 냄새도 났다. 입을 악물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온 몸을 요동치며 꿱꿱 소리쳤다. 『아...악! 아악!!』내가 몸을 심하게 요동치니까 그들은 숯불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허리에 닿도록 했다.



그래도 요동치자, 그들은 끝이 뾰족한 갈고리로 내 배꼽 아래(사타구니)를 찍어 관통시켰다. 허리가 너무 뜨거워 갈고리로 사타구니를 관통시켜도 아픈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움직이자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을 갈고리로 다시 찍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배꼽 아래쪽과 허벅지가 모두 갈고리에 찍힌 채로 계속 요동치다가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얼마동안 내 등에 불을 갔다댔는지 알 수 없다. 끝내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 만에 정신을 차렸는지 나도 모른다. 눈을 뜨자 역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기절해서 대소변을 보았던 것이다. 족쇄에 묶였던 발목은 움푹 패여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조사원들이 옷을 입혀왔는데, 겨우 무릎을 끌고 일어나서 보니 허리가 쓰리고 아팠다. 손으로 만져보니 진물이 나오고 물집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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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한번은 너무 배가고파 땅을 보면서 걸을 때 소똥에서 강냉이 알 세알이 보이는 것이다. 소가 강냉이 이삭을 주어먹고 소화시키지 못하여 나온 배설물이다.


나는 그것이라도 주울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프니깐 그 강냉이 알 3알을 옷소매에 닦아가지고 먹었다. 끔찍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날은 운 좋은 날이었다.



강간당한 나의 사촌누이


하루는 사촌누나가 다른 정치범들과 함께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 경비대의 눈에 들켰다. 그들은 숙모와 누나를 물러놓고 경계선까지 올라왔다고 하면서 말을 시켰다.


나의 사촌누나는 당시 21~22살이었는데 대단히 곱게 생겼다. 경비대 두 명중 상관인 놈이 누나에게 다가가 희롱하기 시작하였고 숙모가 반대를 하자 숙모를 뒤로 묶어놓고 눈을 가리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낮에 사촌누나를 성폭행했다.


숙모가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누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경비대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고 한다. 누나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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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재봉기 받침대를 등에 지고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다가 손에 힘이 빠지면서 떨어뜨려 재봉기 받침대가 부셔졌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나는 보위지도원에게 불려가 네놈은 재봉기 받침대도 못 가져온다고 하면서 네놈의 손이 문제이니 총 작업반장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하였다.

총 작업반장은 식칼로 내손을 책상위에 올리고 칼을 번쩍 들어 내손을 내리쳤다. 순간 오른손 중지가 잘라져나갔고 이렇게 나는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2004년 중반 밤 11시 사상투쟁회의가 끝난 뒤 그때는 웬일인지 4명의 보위원들이 같이 참가하였다. 보위지도원이 우리에게 어느 호실에 이가 많은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러자 남자호실 여자호실 반장들이 일어나 자기네 호실이 이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자 지도원은 약을 주겠으니 그것으로 목욕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각각 한 호실에 20kg짜리 물통을 두통씩 주었다. 여자호실 5명과 남자호실 7명이 목욕을 하였다.



그때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때 그들이 준 약은 쌀뜬물 같은 뿌연 물이였는데 냄새는 밭에 농약으로 쓰던 우아독수라고 하는 농약의 냄새가 났다. 그들이 목욕을 한 후 1주일이 자나면서부터 그들의 목에서는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곪아 터지기 시작하더니 거의 한달 뒤에서는 살이 문더러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고역에 시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조차 못하였다. 그들이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할 즈음에 트럭한대가 오더니 그들 모두를 치워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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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8호 정치범수용소’에 10만명 수감 중”


“해마다 공개총살…어린이 배에 인두로 죄인 ‘표식’남겨”



김소열 기자 | 2008-11-18




북한 평안남도 개천에 위치한 10만명 규모의 완전통제구역인 18호수용소 실체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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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8호 수용소 증언에 나선 임 씨는 국군포로 2세로 1967년에 부친의 죄에 대한 연좌제로 18호 관리소에 수감됐다가 2004년 1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어머니, 형 두 명과 누이동생이 있었지만 형 둘은 풀을 먹고 배탈로 죽었고, 어머니는 철길 노역에서 내려오는 기차를 피해지 못해 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어 “수용된 아이들에게는 인두로 복부에 수용소 소속인 표식을 남긴다”며 “완전통제구역 생존자 신동혁 군과 마찬가지로 나도 (복부에) 그런 표식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수용소에서는 지금 이맘때 쯤 “해마다 15~20명씩 공개처형이 이뤄진다”고 증언했다.



임 씨는 수용소 생활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은 ‘너희들이 부모의 죄 값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해 부모에 대한 미움을 커지게 한다”며 이로 인해 “(수용소에서) 한 여성이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관에 넣고 못질을 해 산채로 땅에 묻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용소 수감자들의 경우 공민증(주민등록증)이 없어 사망신고 절차는 따로 없는 것으로 임 씨는 설명했다.



한편, 이날 북한구금시설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고문피해를 증언한 탈북자 이춘심(가명) 씨는 “중국에 붙잡혀 온 탈북여성들이 몸속에 숨긴 돈을 빼앗기 위해 보위부 요원들은 알몸상태에서 뜀뛰기 동작이나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 시킨다”며 “직접 나뭇가지와 손가락 등으로 항문과 성기를 뒤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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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또 중국 등에서 임신 한 채 송환된 여성들과 관련 “주사기로 200cc 정도의 소독약을 임신부의 배에 직접 주입해 태아를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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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400&num=6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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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전차(석탄 운반차) 운전공인 김철민(당시 나이 54세 정도. 평북 대관 출신)이 석탄을 운반하고 坑으로 돌아오던 중 전찻길에 떨어져 있는 밤알을 발견했다. 너무 배가 고파 눈이 뒤집힌 김철민은 전찻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밤알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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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외치고는 김철민의 머리를 전차 레일 위에 구둣발로 내려 밟은 채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망치로 귓전을 때리는 듯한 총소리와 함께 김철민의 입과 머리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구쳐 나왔다.

보위원은 감독(수감자 중 대표로 정한 사람. 일종의 보위원 프락치. 이름 기억 못함)에게 『이 새끼를 끌고 가라』고 명령했다. 감독이 달려가 피를 쏟는 김철민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보위원이 『이 새끼, 해독분자를 동정하나? 너도 이 꼴이 되고 싶나? 그냥 끌고 가』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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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운전공 김철민이 오빠시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어떤 수감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김철민의 손에 쥐어졌던 그 밤알을 빼내서 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김철민은 죽어가면서도 밤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으스러지도록 꼭 쥔 채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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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는 入所(입소) 당시 다 떨어진 죄수복을 내주고는 다시는 옷을 지급하지 않는다. 찢어지면 찢어진 대로 기워서 입어야 하는데, 오랜 기간 수감됐던 사람들은 완전히 옷이 해져 기울 자리도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갈리영이 죽었을 때 수감자들은 그의 옷을 서로 먼저 뺏으려고 치고 박는 싸움을 벌였을 정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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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는 자신을 담당하는 보위원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보위원이 함께 불러 일을 시킬 경우 담당 보위원의 지시를 먼저 들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다른 보위원은 「이 새끼 내가 부르면 낯가림을 한다」면서 쏴죽이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진술은 『보위원 기분 내키는 대로 쏴죽인다』는 안명철씨(22호 관리소 경비원 출신 귀순자)의 증언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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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같은 내무반에 수용됐던 농구선수 출신 수감자 갈리영씨의 죽음을 기억해 냈다. 갈리영의 당시 나이는 57세 정도. 아버지가 지주였다는 이유로 끌려와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농구선수로 활동할 때는 중거리슛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하루는 문제의 「오빠시」 보위원이 갱 내부를 순찰하다 늘 가지고 다니며 작업자들을 때리거나 지시할 때 쓰는 소꼬리로 만든 채찍을 깜빡 잊고 坑에 놓고 나갔다. 너무나 굶주렸던 갈리영씨는 이것을 몰래 숨긴 다음 물에 불려서 뜯어먹었다.


다음날 채찍을 잃어버린 오빠시는 수소문 끝에 갈리영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끌어내 『당과 인민에 대한 반항자』라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했다.

너무 많이 맞아 갈리영이 혼절하자 보위원은 감독에게 시켜 변소(별도의 건물로 된 것이 아니라 숲 속에 구덩이를 파고 주위를 거적으로 가린 곳)에서 회충을 한 마리 나뭇가지로 둘둘 말아가지고 와서는 『이 새끼야 이것도 고기니까 처먹어라』 하면서 입 안에 마구 쑤셔넣는 것이었다. 갈리영씨는 몸부림을 쳤지만 강제로 나무 막대기를 입안에 쑤셔넣는 바람에 입이 찢어져 피거품이 솟구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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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은 뼈와 가죽만 남은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기 때문에 몇 대 맞으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결국 갈리영도 구타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흘간 불덩이가 되어 끙끙거리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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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4호 수용소에는 어떤 사람이 끌려오는가. 이 질문에 김용씨는 정부 제도에 반대한 자, 방해 책동자,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모욕하거나 비판하는 발언을 하다 발각된 자, 기독교를 믿다가 발각된 자, 간첩, 치안대 관련자, 공장에서 기계를 파괴한 자 등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적대범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악질분자로 분류되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 반대 발언자, 군사정변이나 쿠데타 기도자 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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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와 18호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김용씨가 도로 확장공사를 할 무렵 김종훈은 마침 18호쪽 대동강변에서 돌로 제방을 쌓는 호안공사에 동원돼 대형 트레일러가 지하시설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김종훈은 트레일러에 실린 물건을 보고는 『저건 영변에 있던 원자력 시설』이라는 것을 당장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김용씨는 김종훈의 설명을 소개하면서 『14호 수용소에 있던 의문의 지하시설은 核 관련 시설일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그 이유는 14호 수용소를 운영하는 보위원 가족의 신생아 중 소아마비나 척추가 휘어진 아이 등 기형아 출산율이 높으며, 보위원들도 14호에 근무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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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관리소에서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부부장(고위 간부) 급이 내려오면 숙식하는 일종의 특각(별장)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오면 여성 수감자 중 얼굴이 반반한 21∼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性的 노리개로 삼은 후 비밀유지를 위해 「도주분자」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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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여성들의 경우 얼굴이 예쁘게 생길수록 수난을 많이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는 관리소에 내려오면 자기 별장에서 예쁘게 생긴 여자들을 골라 동침하고는 보위부 3국(예심국) 국장에게 넘겨 실험용으로 쓰다가 죽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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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병하는 보위원들과 여자 수감원들 간에 성추문(부화사건)이 자주 생기자 모든 관리소에 얼굴이 곱게 생긴 여자들을 모두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1970년대 말에는 250여명의 여수감원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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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에도 학교는 있다. 수용소의 인민학교는 4학년제, 고등중학교는 5학년제이다. 그렇지만 말이 학교이지, 주요 일과는 토끼풀 주워오기, 사금 캐기, 돌 나르기, 나무하기, 보위원들의 남새밭(야채밭)에서 일하기 등이다.


아이들은 아침 6시에 등교를 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교원(보위원)들이 지시한 작업량을 채우면서 보내는데,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작업량과 그 강도가 엄청나다. 역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폭행을 하고 배급을 주지 않기 때문에 밤이 으슥해질 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고등중학교에 진학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점은 작업량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인민학교 아이들과 달리 꾀가 많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창 자라나는 나이에 먹지를 못하니 아이들의 사고의 대부분은 항상 먹을 것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렇지만 먹을 것이 없다 보니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는 17세가 되면 어른 취급을 받아 작업량은 늘어나지만 대부분 키가 150cm도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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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은 요덕수용소의 경우 노동화가 1년 6개월에 한 켤레, 겨울철에 신는 솜동화가 5년에 한번 지급이 되지만 고된 노동으로 인해 금방 헤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보통 토끼 가죽이나 돼지가죽에 새끼줄로 맨다던가 아니면 고무벨트나 자동차 폐타이어 옆면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추위를 피할 수가 없어서 대부분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발가락 숫자로 수용소에 수용된 햇수를 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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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들은 주로 막사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족단위는 흙벽돌, 판자, 거적 등을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방바닥과 벽은 흙을 이겨 만들기 때문에 실내에는 먼지가 많다. 지붕은 판자위에 거적을 덮어 만들고, 방바닥은 피나무 껍질로 다다미를 깔아 만든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비가 오면 지붕이 새고 겨울에는 보온이 제대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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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처형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처형 장면보다, 처형되기 전의 사형수 모습이 더 비참하다고 한다.


일단 사형수로 분류되면 먹이지 않는다. 각목으로 때리고 관절을 꺾는다. 반항 할 수 있는 기력을 애초에 빼놓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처형직전 김정일에 대한 욕을 못하게 하려고 입에 솜을 막아 놓는데, 최근에는 효과를 크게 하기 위해 용수철이나 자갈을 물리고 있다.

입을 벌리려 하지 않으면, 돌로 내리쳐 벌리게 만든다. 따라서 처형된 시체를 보면 이가 다 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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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그가 본 김정일의 생활은 한마디로 '호화판'. 7층 저택에 풀장과 운동시설, 바와 가라오케, 소형극장을 갖추고 미모의 여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수영을 즐기며 실내 파도타기를 즐겼다는 것.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종 파티가 벌어졌으며 이때 노출이 심한 댄서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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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북한의 심각한 인권 탄압에 대해서 외부로 알려진 자료가 많지 않았으나 1993년 수용소생활 체험자인 강철환, 안혁의 수기 『대왕의 제전』이 출판되면서 수용소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어서 2년 후인 1995년 전 수용소 경비대원 안명철의 수기 『그들이 울고 있다』가 출판됨으로써 증언의 진실성이 보다 더 확실해졌다.



이 세 사람의 수기와 혈육이 수용소에서 살해당한 귀국자 가족들의 증언으로 아래와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 감금된 사람들은 사회적, 정치적 생명을 상실한 반혁명분자, 인간 쓰레기로 규정돼 보위부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다루고 있다. 수인들은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가혹한 강제노동을 강요당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낸다. 말 그대로 짐승만큼도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


둘째, 김일성은 일찍이 “반혁명분자는 3대에 걸쳐서 죽여 그 가계를 끊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는데 반혁명분자란 소위 종파분자와 계급의 적을 말한다. 이 지시에 따라 반혁명분자로 몰린 본인은 물론이요, 그 가족들까지도 정치범으로 다루어진다.


셋째, 정치범과 그 가족은 재판 없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아무런 방어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투옥 당한다.


넷째, 수인들에게는 외부와 접촉할 자유가 일절 없다. 따라서 북한 밖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친척, 친구조차도 수인들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수용소란 말하자면 블랙홀이요 공포의 늪인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사실 중 그 어느 것도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대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만행이지만, 그 중에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우습게 알고 수인을 능욕하며 죽이는 일이다. 게다가 단번에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수인들의 생존본능을 이용해 그들을 보위부원들에게 복종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한 다음 서서히 죽도록 만들고 있으니 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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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한국사 교과서, 北정치범수용소 인권문제 왜곡”




By 김혜진 인턴기자 -

2015.10.20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논란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북한 관련 전반적인 내용이 상당 부분 편향되거나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북한민주화네트위크 주최로 19일 열린 ‘한국사 교과서 북한 내용 분석을 통한 왜곡 실태’ 세미나에서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는 발제에서 “우리 한국사 교과서는 북한 서술과 관련 해 많은 부분에서 편향되거나 문제가 있는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현행 출간된 한국사 교과서들은 전체적으로 편향성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2011년 판의 경우 총 6종의 역사교과서가 있었는데 이중 북한인권 관련 문제를 다룬 곳은 미래엔컬처그룹 뿐이었고 나머지 5곳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았다”면서 “그나마 (북한인권 문제를) 다뤘던 미래엔컬처그룹도 정치범수용소 등의 인권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한 북한이탈주민문제’라고 설명하며 논점을 흐렸다”고 덧붙였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도 발제에서 “북한 주민들이 직접 겪은 인권침해와 유린이 빈번하게 자행되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내용은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면서 “남한의 일부교과서에서 그나마 북한의 실상을 언론과 종교 활동 제한, 여행, 거주이전의 자유억압, 공개처형 등의 인권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간략한 서술로만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국장은 “일부 남한의 교과서들은 북한정권이 해방 후 실시한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북한의 것을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면서 “결국 남한은 해방 후 농지개혁과 재산처리가 잘 되지 못하고 북한이 오히려 잘됐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고 일갈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윤태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 소장은 대표적 좌파교과서로 비판받아 온 금성출판사 2015년 판(2013.10 검정) 『고등학교 한국사』의 분석을 통해 “교과서(373p)가 남북의 토지개혁을 비교하며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토지개혁은 사회주의제도인 토지국유화로 가는 임시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토지개혁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국유화라는 용어를 함께 언급해줘야 하는데 그런 말은 쓰여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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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전한 ‘수용소의 공포’…한미 北인권 전략은 비윤리적”


로버트슨 HRW 부국장 "北, 강제노동 중단 등 근본적 권리 개선 조치 선행해야"



By 하윤아 기자 -
2019.02.20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로 남아있다. 집권 7년차인 김정은은 국무위원장과 노동당 위원장을 겸임하면서 거의 완전한 정치적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발표한 ‘2019 세계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이같이 서술했다. 시민적·정치적 자유의 제한, 독립적인 조직체 형성 금지, 자의적 체포와 구금, 강제노동 등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인권 유린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렇듯 북한 내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북한인권 문제가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필 로버트슨(Phil Robertson) HRW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최근 진행된 데일리NK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미국과 한국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미스럽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북한인권 문제가 정상 간의 대화에서 하나의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를 언급하면서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인권 의제는 (현재) 중요하지 않으며 나중에 다룰 수 있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것은 비윤리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지도자가 개혁에 전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하고 중요한 지표는 사실 인권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의지”라며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상태를 끝내고, 정상적인 국가로 고려되기 전에 근본적인 권리를 존중하는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로버트슨 부국장과의 서면인터뷰 전문.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 개선 조짐이 전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인권 개선에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한 전역에 걸친 김정은의 지속적인 정치적 통제는 ‘내가 반체제 인사로 분류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주민들의 끔찍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여전히 수만 명이 고문을 당하고 산 속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는 ‘관리소(정치범수용소)의 공포’는 김 씨 일가가 바라는 것을 확실히 보장하는 무시무시한 방법이다. 북한 주민들이 북한 내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북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공포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과 노동당의 절대적 지배에 도전하는 어떤 정치적인 움직임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김정은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식량이나 물품의 분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핵 프로그램에 엄청난 양의 자원을 전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떠한 도전에도 직면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북한에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말이다.”


“Kim Jong-un’s continued political control over the country depends on making sure the North Korean people are deathly afraid of what will happen to them if they categorized as anti-government. The fear of the kwan-li-so, where tens of thousands of people are still being tortured and worked to death in the mountains, is a formidable way to ensure compliance with what Kim and his family wants. Fear is the reason that North Koreans who have a chance try to flee the country rather than stay and change it.

The government’s total intolerance for basic civil and political freedoms like expression, association and peaceful public assembly is to make sure that no political movement can form to challenge the absolute control of Kim and the Worker’s Party of Korea. Because Kim Jong-Un can totally suppress demands for distribution of food and other goods to meet people’s basic needs, he does not face a challenge for diverting huge amounts of resources to the nuclear program while people still don’t have enough to eat.”



-북한 당국은 이러한 인권 지적에 반박하며 자신들은 ‘인권의 천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북한에 독립신문이나,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어떤 형태의 조직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북한의 완전한 인권탄압을 보여주는 매우 명백한 지표다. 북한 전역에 걸쳐 진행되는 사업에서 강제노동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위성사진을 이용해 산 속 정치범수용소를 찾는 것 또한 쉽다. 북한의 선전과 인권에 대한 거짓말을 부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The fact that there are no independent newspapers, political parties, civil society groups, or any other form of organizations outside the government’s control is a very clear indicator of the total suppression of rights in the DPRK. It’s also easy to spot forced labor by people on projects all over the country and political prison camps in the mountains using satellite imagery. Disproving Pyongyang’s propaganda and lies on human rights is not hard.”



-북한의 인권 상황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나.


“유일하게 개선된 점은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의 탄생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과 다른 나라의 자본을 유치하는 것에 필사적인 이유 중 하나는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쓴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의도는 어떤 형태의 저항도 억누르면서 주민들의 기본 욕구와는 거리가 먼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에 자본을 투입하려는 행동에서 읽을 수 있다.”


“The only thing that has improved is the creation of local markets which allow people with resources to buy and trade goods they need to survive. One of the reasons that Kim Jong-un is so desperate to get foreign investment from South Korea and elsewhere is he can use those resources to try and convince the people he’s committed to making their lives better. But his real intent can be seen in the way he suppresses any form of dissidence, and his diversion of resources away from people’s basic needs to projects like building nuclear weapons and missiles.”



-북한인권 문제가 핵문제에 가려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에 손을 뗀 것 같다. 그들의 전략은 김정은에게 ‘끔찍한 인권 기록들과 관련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국제사회와 협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에 근시안적이고 비윤리적이다. 북한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전국적으로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이 북한에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이다.”


“President Moon Jae-in an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apparently washed their hands of any concerns about human rights in North Korea. Their strategy is both short-sighted and unethical since it gives Kim Jong-un the belief that he can negotiate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ithout facing any sort of accountability for his horrendous human rights record. It would be the height of folly for South Korea to put foreign direct investment into North Korea at this time when the DPRK has not even become a member of the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 and still has forced labor and child labor occurring all over the country.”



-북미 또는 남북 회담에서 북한 인권이 하나의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과 한국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미스럽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인권은 중요하지 않으며 나중에 다룰 수 있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비윤리적이며 노골적으로 말하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북한의 지도자가 개혁에 전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하고 중요한 지표는 사실 인권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의지이다.”


“The fact that neither the US nor South Korea is talking about human rights in the DPRK when they hold summits with Kim Jong-un is scandalous and unacceptable. Donald Trump and Moon Jae-in are both pursuing unethical and frankly unsustainable strategies that human rights don’t matter and can be dealt with later. In fact, the willingness of the DPRK to tackle its human rights problems will be a key indicator of whether Pyongyang’s leaders are really committed to any sort of reform.”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침묵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현재 한국 정부의 관심 또는 개선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건설 사업에 강제노동을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거나 정치범수용소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는 등의 어려운 주제를 논의하지 않음으로써 북한 스스로 ‘인권남용 문제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구나’, ’국제사회도 이런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구나‘라고 믿게끔 만들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상태를 끝내고 정상적인 국가로 고려되기 전에 근본적인 권리를 존중하는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악의 인권침해 정권 가운데 하나로 꼽는 북한 당국을 상대한다는 사실을 쉽게 잊은 것 같다.”

“South Korea’s failure to raise human rights in North Korea is short-sighted and will ultimately be counter-productive. By failing to discuss difficult topics like the North’s systematic use of forced labor in construction projects or the continued operation of political prisoner camps, President Moon Jae-in is allowing North Korea to believe they can get away with their rights abus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ill accept them as they are.

In fact, there need to be fundamental rights respecting reforms before North Korea can be permitted to end its pariah status and be considered a normal member of the global community of nations. Moon Jae-in seems to conveniently forget that he is dealing with a government that many consider among the worst human rights violating regimes in the world.”



-지난해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인권 토의가 5년 만에 무산된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회의가 가능한 한 빨리 개최될 수 있도록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북한인권을 안보리의 의제로 상정하려면 9표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그것이 가능하리라 확신한다. 북한은 이 검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Human Rights Watch is working hard with the US and other UN Security Council members to arrange for this meeting to happen as soon as possible. Of course, we need to get 9 ‘yes’ votes to put North Korean human rights on the Council’s agenda, but we’re confident that we will be able to do so in the near future. North Korea should not think that they have escaped this scrutiny.”



-마지막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경제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의 하나는 북한이 ILO에 가입하는 것이다. 또 감옥에서, 그리고 북한 당국이 주도하는 농업·인프라·정치 사업에서 행해지는 강제노동을 즉각적으로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아동노동을 끝내는 것, 그리고 아동을 강제노동 인력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르침을 받을 질 좋은 학교에 보내는 개혁에 착수하는 것도 필요하다. 북한이 진정으로 국제경제사회에 진입할 준비가 돼 있다면 독립 노동조합 구성을 허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노동권의 남용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는 북한 정부가 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학대를 끝내며, 억류된 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전반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새로운 약속으로 보완돼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정치개혁에 나설 수 있고, 사회·경제적 변화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When it comes to the North Korean economy, one of the most important steps would be for the DPRK to join the ILO, and immediately take action to end use of forced labor in prisons and in government led infrastructure, agricultural, and political projects. Reforms need to be undertaken to eliminate child labor and get children into quality schools that teach them rather than treat them as a forced labor team. North Korea needs to end labor rights abuses across the board, including permitting the formation of independent trade union bodies, if it is really ready re-join the international economic community.

Politicall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hould admit the existence of detention camps and end all abuses there, and help detainees to return to their homes. This reform needs to be across the board and complemented by a renewed commitment to respect basic civil and political freedoms such as freedom of expression, association, and peaceful public assembly. Only then will the people of North Korea feel brave enough to really demand the political reform must go hand and hand social and economic changes, and start demanding their rights.”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 내부서 일가족 4명 동반 자살”



By 정서영 기자 -
2019.09.04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수감된 일가족 4명이 동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내부 소식통이 3일 알려왔다.


함경남도 소식통은 3일 관련 정보에 밝은 보위원을 통해 “요덕군 산중에 있는 관리소에서 이곳에 온 지 반년 정도 된 일가족 4명이 8월 초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보위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내용이기 때문에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관리소 내에서는 가족도 모두 흩어져서 지내야 했는데 부모가 표창을 받아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됐는데, 이날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초기에는 가족도 갈라 놓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표창이 주어지면 가족이 모여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허용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가족은 수용소에 들어온 지 6개월에 불과하고 병이나 사고가 없어 관리소 측도 가족이 모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관리소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부모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준비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사망 사실은 가족이 모여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근로 시간에도 정해진 장소에 나오지 않자 수용소 관리원들이 집에 찾아가면서 드러났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가망도 보이지 않고 관리소가 너무 견디기 힘들다보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위원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들의 신상과 죄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자살 방법은 아버지가 가족의 목을 조르고 스스로 비수를 이용해 목을 찌른 것으로 보인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관리소 측은 이들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을 살려준 은혜도 모르고 반역행위를 했다면서 내부에서 비판 사업을 하고 시체를 신속하게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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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北 수용소 없다?… “수감 인원 늘리고 ‘유사시 사살’ 방침까지 내놔”

[구금시설을 파헤치다①] 김정은 시대, 이미 폐쇄한 수용소도 부활..."주민들 면밀 관리 의도"



By 이호진 기자 -
2020.08.05



김 씨 일가 3대 세습 정권(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사상과 체제에 반하는 주민들을 가두고 감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북한 관리소(정치범수용소). 김정은 시대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복수의 데일리NK 소식통에 따르면, 일단 수감자 숫자가 이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약 13만 명의 인원이 국가보위성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지만, 2020년 3월 현재는 16만 명이 갇혀 있다고 한다. 집권 8년 동안 약 3만 명이 늘어난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14호 관리소(평남 개천) 4만 3천 명 ▲15호 관리소(함남 요덕) 5만 5천 명 ▲16호 관리소(함북 화성) 2만 4천 명 ▲25호 관리소(함북 청진) 4만 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함북 청진의 경우 원래는 수감 인원이 적었으나 지난해 10월경 급격히 늘었다. 소식통은 “50명이 들어있던 방에 150명을 가둘 정도로 인원이 갑자기 불었다고 한다”면서 “주로 평양 쪽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하던 인원들이 잡혀 들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적인 돈벌이를 하던 과정에서 이른바 착복 등 비위에 연루된 인원이 한꺼번에 체포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안전성에서 관리하는 정치범수용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안전성에서는 평남 개천의 17호(2만 1천 명), 평남 북창의 18호(2만 6천 명) 등의 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다. 즉, 보위성과 안전성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은 총 20만 명 가량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식통은 “교화소에 보내기에는 좀 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주민들을 주로 이곳에 수감시키고 있다”면서 “수감자들은 1호 방침(김정은 지시)을 통해 사회에 나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고 있긴 하지만, 생활을 똑바로 못하면 국가보위성 소속 관리소로 보내지게 되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다”고 말했다.


원래 17호와 18호 관리소는 일찍이 폐쇄된 바 있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부활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더욱 촘촘하게 관리·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운영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당적 강령과 사상을 온사회화 할 때까지 이를 반대하는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 관리소는 정상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은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수용되면 사회로 나갈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과 사상교육과 강제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혁명화 구역’으로 나눠서 관리하는 방식도 똑같다. 또한, 수감자들은 이전처럼 ‘공민’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후 외부와의 접촉도 철저히 차단된 채 살아야 한다. 주민들이 생산력을 제공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관리소 특유의 악랄함은 그대로 계승한 셈이다.


심지어 김정은 집권 들어 “전쟁이 발발하거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이 들면 모든 수감자는 사살해야 한다”는 것이 매뉴얼로 공식화됐다고 한다. 이는 체제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북한은 외부엔 ‘관리소는 없다’는 주장을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당국은) 이를 인정할 경우 인민 대중 중심의 사회라고 하는 체제 근간에 대해 인민들이 의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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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북한 정치범수용소 계속 진화…체제에 필수적 요소”




기자 김영교

2020.11.20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데이비드 호크 전 국제 앰네스티 미국지부장이 말했습니다. 정치범수용소가 북한 체제 안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김영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데이비드 호크 전 국제 앰네스티 미국지부장은 19일 워싱턴의 대북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인터넷 화상 간담회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호크 전 지부장] “It's always evolving, because the prison camp system is an integral part of the socio economic, political system of North Korea. So, it's a constantly evolving political organism.”


수용소 제도는 북한의 사회, 경제, 정치 체제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기에 언제나 진화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수용소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정치적 유기체와 같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 대해 상세히 밝힌 ‘감춰진 수용소’의 저자인 호크 전 지부장은 북한이 오래된 수용소를 닫고 새 수용소를 열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일부 수용소가 닫히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북한 내 광산과 연관을 지었습니다.


[녹취: 호크 전 지부장] “Some of the prison camps are built around particular mines. And the prisoners do force labor in mining and that particular mine is exhausted. So, it no longer makes economic sense to have all this forced labor in that particular mine.”


수용소 중 일부는 특정 광산 근처에 있어 재소자들이 광산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되는데, 만약 그 광산이 고갈된다면 그 곳에서 강제 노역을 시킬 경제적인 이유가 없어진다는 설명입니다.


또 일부 수용소는 재소자들이 목재나 동물 농장, 경공업을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도 한다며, 수용 인구가 줄어 수용소의 통합이 일어나기도 하고 수용소가 이동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호크 전 지부장은 하지만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에 의해서 운용되는 수용소의 기본적인 역할은 체제에 충성하지 않는 주민들을 처벌하고 사회에서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곳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에 대해 늘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용소 내에서 재소자들에게 충분한 음식이 제공되지 않아 대부분 굶주리고 영양 실조를 겪고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수감자들의 높은 사망률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호크 전 지부장은 또 수용소 내에 성범죄가 널리 퍼져 있다면서, 교도관들이 여성 재소자들과 성관계를 하면 법으로 처벌 받게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올해 발표한 ‘2020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 수용소 등에서의 강제 노역 등을 북한 정권의 정치적 압박과 재원 마련 수단으로 지적하며 이를 ‘인신
2021-01-13 19: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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